“중소 핀테크 업계만 허용…빅테크, 금융업 관련 제도 마련 전까지는 배제해야”
금융당국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금융상품 중개업 시범운영에 나선 가운데 빅테크의 금융상품 중개업 진출을 허용하기 전, 독점 문제 등 리스크를 최소화할 제도적 기반부터 갖춰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중개 플랫폼은 금리 경쟁을 부추겨 금융시스템 불안정을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금융상품 중개 허용에 따른 이슈 점검’ 보고서를 통해 빅테크 기업들에게 자금 중개 기능의 핵심인 예금과 대출상품까지 중개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은 금융안정성, 소비자 보호 등의 측면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올해 8월 금융위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예금, 보험 상품 등을 비교하고 추천하는 서비스의 시범운영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후 지난달 신한은행, 뱅크샐러드, 네이버파이낸셜 등 9개 핀테크사, 금융회사의 온라인 예금상품 중개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해 예적금 상품을 소비자에게 비교, 추천할 수 있게 했다.
보고서는 금융당국이 ‘혁신금융서비스’라는 방법을 통해 빅테크 플랫폼의 금융상품 중개업을 허용했지만, 이에 따른 불공정 경쟁, 소비자 피해 등 우려사항을 방지하기 위한 세부 방안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차원의 대책만 제시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우선 온라인 플랫폼상의 시장지배적 지위와 빅데이터를 갖춘 빅테크들이 금융상품 중개시장을 장악해 경쟁을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양한 비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갖춰놓은 빅테크가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빠르게 확대하는 한편, 금융회사는 대출, 예금 상품을 빅테크에게 공급하는 제조업체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어 빅테크의 시장지배력 강화에 따라 소비자의 편익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금융상품 판매업자의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진 뒤 빅테크가 판매업자에게 높은 수수료를 요구했을 때 거절이 어려워지고 일부 비용이 불가피하게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이밖에 빅테크의 비금융사업 리스크가 금융사업으로까지 전이될 가능성, 중개 플랫폼으로 심해진 수신금리 경쟁이 결국 대출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취약계층의 부담을 높이는 역효과 가능성 등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이윤재 금융연구팀장은 시장 유동성 경색 등의 위기가 있는 현 시점에서는 금융시스템 안정성이 유지되도록 일관된 정책 신호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은행권의 과도한 자금조달 경쟁을 자제해달라는 당국의 주문과 금리 경쟁을 부추길 가능성이 큰 온라인 플랫폼의 예금 상품 중개서비스 도입 논의는 일관성 측면에서 배치된다”며 “가시적으로 시장의 유동성 경색이 완화되고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확보된 이후에 제도 시행을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제도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사전에 막을 방안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팀장은 “금융상품 중개행위와 관련해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한 예외 허용은 중소규모의 핀테크에 한해 적용하고, 빅테크의 경우 기존 금융법률을 정비해 규율할 수 있기 전까지 배제해야 한다”며 “금융업에 관여하는 빅테크 행위에 대해 명확히 규율 가능한 법적ㆍ제도적 방안 확립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