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기한과 유통기한이 뭔가요?”(소비자)
“요거트 소비기한을 32일 후로 정하면 찝찝해서 사 먹을까요?”(식품회사)
1985년 도입 후 38년간 시행됐던 ‘유통기한’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를 대체할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소비기한 표시제는 제대로 소비기한을 표시하지 않거나, 변조하는 등 규정을 위반할 경우 제품 폐기나, 영업정지, 제조 정지뿐만 아니라 영업허가 및 등록 취소 처분까지 취해질 정도로 강력히 제재된다. 하지만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1년간의 계도기간이 주어지면서 소비자는 물론이거니와 식품업체들도 혼란스러운 모습이 역력하다.
소비기한이나 유통기한은 모두 식품의 수명을 결정하는 방식 중 하나지만 유통기한은 영업자가 식품판매업자가 제품을 유통하고 판매가 허용되는 시점을 중심으로 결정된다. 이 때문에 “유통기한이 며칠 넘더라도 섭취는 가능하다”는 의견에 대해서 소비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았다. 새로 도입되는 소비기한 표시제는 식품이 수명을 다했다는 의미로 섭취가 가능한 시점을 중심으로 날짜가 명확히 표시돼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통상 유통기한은 품질 한계 기간의 60~70%로 설정되고, 소비기한은 대체로 80~90%로 설정된다.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이 바뀌면서 제품에 표시되는 날짜는 대부분 뒤로 밀리는 셈이다. 식품안전정보원은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으로 소비자와 산업체에 연간 각각 8860억 원과 260억 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음식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편익은 약 1조 원대로 불어난다.
사회 전체 편익이 늘어난다지만 이해 관계자들이 마냥 반기는 것만은 아니다. 기업으로서는 소비자들이 통상 제품에 표기되는 날짜가 많이 남은 제품을 선호하는 만큼 구매 유도 효과와 재고 관리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번 구매한 제품을 섭취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재구매 유도가 어렵다는 단점도 상존한다. A 식품업체 관계자는 “장단점 중 어떤 부분이 크게 작용할지 모르는 만큼 실제 도입해봐야 유불리를 알 것”이라고 봤다.
기업들의 우려는 식품 사고가 잦아질 것이라는 점이 우선 꼽힌다. 식품은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 쉽게 상할 수 있어서 제품에 표기되는 날짜가 뒤로 밀리는 만큼 부패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제조와 유통 단계에서 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관 단계에서 문제가 많이 생긴다”면서 “잘못된 보관법으로 소비기한만 믿고 섭취했다가 탈이 났다고 항의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마냥 환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제도 도입에 따른 비용 역시 제조 및 유통업체들의 몫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는 소비기한 제도 도입에 따라 우유와 두부 등 일부 제품의 유통과 보관 온도를 현행 0~10도에서 0~5도로 낮추는 방안 적용도 검토 중이다. B 식품업계 관계자는 “우유와 두부 등을 5도 이하에서 유통해야 할 때 콜드체인 차량의 온도를 지금보다 낮춰 운행해야 하는 만큼 기름값도 더 든다”고 전했다. 소매 유통업체 관계자는 “오픈 케이스 냉장고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셈인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품목마다 새롭게 소비기한을 정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달 초 23개 식품 유형 80개 품목을 대상으로 ‘소비기한 참고값 안내서’를 배포했다. 이에 따르면 가공유는 현행 유통기한 16일에서 소비기한 24일로, 두부는 17일에서 23일로 바뀐다. 요거트는 18일에서 32일, 빵류는 20일에서 31일, 프레스햄은 43일에서 66일로 늘어난다. 참고 사안일 뿐 강제는 아니다.
C 식품업체 관계자는 “상품마다 소비 기한을 현재 시뮬레이션 중”이라면서 “표시 날짜를 함부로 옮기게 되면 소비자들의 혼란스러워해 중간에 상하게 되는 일이 많은 만큼 정부가 제시한 값보다 짧은 기간 표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D 식품업체 관계자는 “유예 기간에 새로운 콜드체인 배송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면서 “신제품은 소비기한을 바로 도입하지만, 기존 제품들은 현재 재고를 털고 나서 차례로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환영과 우려가 교차한다. 소비기한을 반기는 소비자들은 제품의 실제 소비 기한이 길어지면서 지출을 아낄 수 있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배 씨(40)는 “그동안 유통기한이 지나면 바로 버렸는데, 소비기한으로 표기날짜가 길어진다니 가계에 보탬에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기한 도입에 따른 안정성 우려도 적지 않다. 경기도 광명에 거주하는 주부 정 씨(39)는 “기존 유통기한보다 제품에 표기된 날짜가 2배 가까이 늘어나는 제품도 있는데, 아이한테 먹이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맛보게 할 것”이라면서 “대형마트에서 파는 제품 중에는 이전에는 유통기한이 지나 진열조차 하지 못할 상품도 이제 팔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제품을 먹고 탈이 났을 때 기업들이 보관방법이 잘못됐다고 발뺌하며 보상에 소극적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제도 도입에 따른 홍보 부족도 도마 위에 오른다. 올해 8월 한국농어촌경제연구원 박미성 연구위원 외 2인이 내놓은 ‘식품 소비기한에 대한 소비자 인식 및 개선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기한이 지난 제품을 소비하겠다고 응답한 이는 전체의 52.92%를 차지한 반면,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소비하겠다는 소비자는 6.24%에 불과했다. 소비기한이 지나면 제품의 보관 상태와 관계없이 소비하면 안 됨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이해한 소비자가 많았다는 얘기다.
박 연구위원은 “충분한 홍보가 없어 제도 도입 시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하대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 역시 “소비기한과 유통기한의 차이가 뭔지도 모르는 소비자가 대부분인데, 유예기간까지 둬서 혼란만 올 것”이라면서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함께 적는 방법도 유용한 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품마다 관리법이 다른 만큼 중소형 마트 등에 냉장 시설을 지원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 대책도 요구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