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재정준칙으로 정치를 견제하자!

입력 2022-11-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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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석 인천대학교 무역학부 교수.
▲옥동석 인천대학교 무역학부 교수.

어떻게 하면 국가재정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할 것인가?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은 가계생활과 국가재정의 본질적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돈을 시장에서 직접 쓰기도 하지만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며 간접적으로 쓰기도 한다. 개인들이 돈을 직접 쓰는 시장선택과 정치인(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쓰는 정치선택의 차이를 규명하면 국가재정의 본질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한 부류의 학자들은 의사결정 원리가 시장선택에서는 '1원 1표'이지만 정치선택에서는 '1인 1표'라고 주장한다. 이는 시장에서 개인의 불평등성을 강조하는 표현이지만, 엄밀히 분석해보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개인의 영향력과 지배력은 정치구조 내에서도 개인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경쟁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정치 역시 시장처럼 불평등하기란 마찬가지다.

시장선택과 정치선택의 본질적 차이는 오히려 '선택과 결과의 대응성'에 있다. 시장에서는 개인이 선택한 상품이 그 대가와 일대일의 확실한 대응을 이룬다. 반면 정치에서는 개인들이 정치인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대응이 매우 불확실하다. 정치인이 기회주의적(이중적)으로 행동하면 개인의 선택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치인의 공약은 모호하기도 하고 서로 모순되기도 하다. 당선된 이후 공약은 정치인의 편의에 따라 취사선택되며,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개인이 선택의 대가를 치르는 측면에서도 시장과 정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시장에서는 개인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려면 그에 대한 대가를 명확하게 부담해야 한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와 같이 시간이 갈수록 그 폐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분명한 인과관계가 존재해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반면 정치에서는 대리인을 잘못 선택했더라도 그 피해가 지지자에게만 집중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나 다음 세대(generation)에게 얼마든지 전가할 수 있다.

이처럼 선택과 결과 사이의 불확실한 대응성이 정치선택의 본질이고, 또 국가재정의 본질이기도 하다. 국가재정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더라도 정치인들은 자신의 재산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또한, 정치인들은 반대자들에게 부담을 지우면서 그 지지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결정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공존이 가능한 시장과 달리 정치선택은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의 성격을 띠기에 더욱 극렬하다. 정치이익을 위한, 정치인에 의한, 정치인의 오남용이 국가재정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가재정은 경제위기와 경기불황에 대응해야 하고, 국민들의 복지와 의료지원을 강화해야 하며, 지역균형발전과 소상공인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재정운영에서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진정한 대리인으로 행동하게 하려면 무언가 견제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 견제장치는 대의민주주의 발전 정도에 따라 복잡한 내용이 될 수 있지만, 가장 우선적인 원칙은 정치인들이 쓸 수 있는 재정총량의 한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재정준칙은 정치인들의 재정 오남용을 견제하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다. 한국이 지금껏 건전 재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재정수지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암묵적인 합의가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돈을 찍어서라도 적자재정을 해야 한다는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갓 정치를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재정준칙을 명문화해 입법하겠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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