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채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공공부문에 대해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깜깜이 채용’을 시행해왔다. 깜깜이 채용은 지원자의 출신 지역, 학력, 가족사항 등이 채용 과정에서 노출하지 않도록 한 제도다. 이러다 보니 인사담당자들은 지원자들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인력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전문인력을 박사학위자로 뽑아야 하는 연구기관들은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인재 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제로 연구자들의 능력 척도가 될 수 있는 박사학위는 어느 대학에서 받았고, 어느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했는지, 지원자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교수의 추천서 등은 제출할 수가 없다. 연구기관으로선 말 그대로 깜깜이 채용 과정을 거쳐 박사들을 선발해온 것이다. 이러다 보니 2019년에는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중국 국적자가 지원해 선발한 희한한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관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된 블라인드 채용 관련 설문조사에서는 18개 기관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지원자의 전문성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직장 경력, 자기소개서 내용 이외에 지원자의 전공 적합성, 전문성, 연구역량 및 수월성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고용 대물림’ 방지라는 긍정적 효과도 일부 있다. 지원자 가족의 재산, 직업, 학력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고위직 자녀가 부정청탁을 통해 대기업에 채용됐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젊은 세대들은 ‘엄마찬스’, ‘아빠찬스’에 분노해왔다. 하지만 이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전문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직군에까지 깜깜이 채용을 강제하는 것은 공권력의 월권행위와 다름 없다.
해외 주요 국가들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해외의 블라인드 채용은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블라인드 채용과는 내용이 다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9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 주요 국가 중 공공부문 채용에서 지원자의 출신 학교, 전공, 학점 등을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는 사례는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인종차별, 성차별, 연령차별, 외모차별 등을 노출되지 않게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우수 연구자 확보를 가로막았던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우선 폐지하고 다른 공공부문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국가 성장의 동력이 되는 과학기술 분야를 비롯해 공공기관들이 우수 인재를 영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채용은 많은 정보를 통해 제대로 된 인재를 선별해야 하는데 블라인드 채용 방식은 정보를 더욱 감추는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채용의 핵심은 뭔가를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정보 확보를 통해 제대로 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 방식 폐지는 늦었지만 다행이다. 앞으로도 공정성과 투명성 차원에서라도 블라인드 채용보다는 언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기업은 지원자의 풍부한 정보를 통해 좋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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