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갈등 깊어도 해 넘기지 않고 예산 처리해왔지만
이재명 수사 반발하며 최초 시정연설 보이콧 '강수'
尹 "헌정사 관행 무너져, 국회 위해 바람직한가" 강경태세
野 "고금리·고물가 재정기여도 필요"…'긴축 포기' 요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국회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진행 중인 시점이라 정국경색으로 인해 ‘준예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박정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아직 예산안 심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준예산을 운운하는 게 맞는 이야기인가. 정말 국회랑 싸우겠다는 건가”라며 준예산 편성은 전례가 없다는 질문에는 “모든 일은 다 처음 있는 일인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준예산 가능성이 제기된 것 자체로 불쾌하다는 것이다. 준예산 사태 가능성 언론보도에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인용됐기 때문이다.
준예산은 전년도 예산에 준하는 최소한의 예산으로, 내년도 예산안이 올해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을 경우 편성된다. 정부 기능 유지를 위한 관리비 등만 집행이 가능한 예산이다.
그동안 준예산을 편성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정국경색으로 과거 정부가 준예산 편성을 준비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여야는 아무리 갈등이 골이 깊더라도 결국 해를 넘기기 전에는 예산안을 처리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준예산 사태까지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첫 예산안 시정연설에 민주당이 보이콧을 해서다. 헌정사상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6일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에서 “30년간 우리 헌정사의 관행으로 굳어져 온 게 어제부로 무너져서 앞으로도 정치상황에 따라 시정연설에 불참하는 일이 종종 생기지 않겠나”라며 “그건 결국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가 더 약해지는 것으로 국회를 위해서도 과연 바람직한가”라면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헌정사상 첫 시정연설 보이콧이라는 강수에도 윤 대통령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자 준예산 사태 우려는 더욱 커졌다. 민주당이 과반 이상 의석을 지닌 상황에서 강 대 강으로 부딪히면 최초 준예산 편성도 불가능하지 않아서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준예산을 검토하지 않았다면서도 “다수당인 민주당이 책임 있게 예산안 논의에 협조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민주당은 긴축이라는 윤석열 정부 예산 방향 자체를 바꿀 심산이다. 이 대표 의혹에 대한 특검과 민주당사 검찰 압수수색에 대한 윤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등 그간 민주당의 요구가 모두 거부된 만큼 예산안 심사를 통해 확실한 태도 변화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정부가 사실상 긴축 예산안을 제출했는데, 고금리·고물가 상황에서 재정기여도가 분명 필요하기 때문에 심의 과정에서 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