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00대 기업 중 정관에 경영권 방어조항을 채택한 곳은 8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사모펀드가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 방어수단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해 기준 자산 상위 100대 기업(금융사 포함)의 정관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왔다고 밝혔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은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기존 이사를 해임하거나 정관 변경, 영업 양도 등이 이뤄진다. 기업들은 이에 대비해 정관에 결의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전경련은 정관에 경영권 방어조항을 채택한 8곳도 소극적 방어수단만 행사할 수 있고 실효성도 적다고 분석했다.
전경련 조사대상인 자산 상위 100대 기업 중 7개 사는 정관에 이사 해임 결의를 ‘출석 주주의결권의 70/100 이상’으로 하거나 ‘발행주식 총수의 1/2 이상’ 혹은 ‘발행주식 총수의 2/3를 초과’하도록 해서 상법에서 정한 특별결의 요건(발행주식 총수의 1/3 이상 찬성)을 조금 넘기는 수준으로 정하고 있다.
이사진의 임기가 일시에 만료되는 것을 막는 방어 수단이 ‘시차임기제(Staggered Board)’다. 통상 이사 임기가 3년인데, 이사 총원의 1/3씩 임기가 만료되도록 구성하면 경영권 공격세력이 주식 과반수를 매수해도 이사진 전체 교체가 어려워진다. 상장회사 이사진이 일시에 교체되는 경우가 드문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기업이 실질적으로 시체임기제를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를 정관에 명시적으로 채택한 기업은 한 곳에 불과했다.
전경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한국 기업들이 정관에 넣을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은 △이사 해임 가중 요건 △이사 시차임기제 △인수·합병 승인 안건의 의결정족수 가중 규정 △황금낙하산주 정도다.
전경련은 이 같은 수단들은 주주총회에서 안건의 가결(통과)을 어렵게 하거나 임원진들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걸 막는 정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해외기업들이 △차등의결권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황금주 등 적극적 방어수단을 활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는 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전경련은 “최근 한진칼이나 교보생명 사례처럼 지배구조에 일시적 균열이 발생했을 때 사모펀드들이 이를 틈타 기업 지배권을 위협하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수단 부족이 확인된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준하는 방어수단 확충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