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현지 공장의 자국 기업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1년 유예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앞으로 1년간 허가 절차 없이 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게 돼 중국사업에 차질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개별 심사에 따른 절차 지연 등의 불확실성이 일단 해소된 것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한숨 돌렸지만 리스크는 여전하다. 당장 이번 조치는 현재 운영 중인 공장 업그레이드에 한정된 1년짜리다. 1년 뒤는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미래 사업에 대해서는 장비 수입을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지 한국 측과 계속 협의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예 조치가 연장되지 않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에 장비와 부품 투입 상황을 미국 정부에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마이크론 같은 미국 경쟁사에 기밀정보가 흘러 들어갈 개연성이 다분하다. 만에 하나 미국 정부가 최신 장비 수출을 막으면 중국 내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미국이 이들 기업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의 신규 투자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 10년간 중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 신설이나 확장을 금지한 반도체과학법도 비슷한 맥락의 잠재 리스크다. 외국인 투자심사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은 또 다른 변수다. 중국과 관련이 있는 기업도 대상에 포함돼서다. 자칫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기업 M&A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동맹’ 참여에 대한 중국의 반발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비단 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와 바이오도 비상이다. 미국 내 생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미국 내 한국 전기차 판매가 급감하는 등 우려가 현실이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열린 마음으로 협의하자”는 친서까지 보냈지만 해법은 오리무중이다. 우리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은 바이오 행정명령의 불똥이 튈까 긴장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기술 확보를 막고 기술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한다.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간다. 반도체만 해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미국은 다수의 제작 원천기술을 갖고 있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시장이다. 양자택일할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마냥 뭉갤 수도 없다. 이미 미국의 국익 앞에서 동맹이 힘을 잃은 지 오래다.
마땅한 답은 없다. 수출통제 1년 유예를 이끌어 낸 것처럼 정부와 기업이 공조 외교를 통해 리스크를 사전 차단하거나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다. 이를 위해 미국과 소통 채널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의 갈등사안은 동맹국들과 공조를 통해 부담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초격차 기술 확보다. K칩스법(반도체 특별법) 같은 첨단산업 육성법안을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