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안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처분을 위한 세부계획 수립 등을 조건으로 원자력발전(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다. 다만,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이하 방폐장) 건설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방폐장이 건설되지 않아도 계획·법률만 존재하면 절차상 하자가 없어서다.
환경부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한 초안을 20일 공개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구분돼 있다.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지속가능한 물 보전, 자원순환, 오염방지·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등 6개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현재 69개 경제활동이 포함돼 있다.
앞서 유럽연합(EU)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지자 7월 11일 ‘유럽연합 녹색분류체계(EU Taxonomy)’에 원전을 포함했다. 이에 우리 정부도 11개 분과 협의체를 구성해 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초안에서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은 ‘녹색부문’에, 원전 신규 건설과 계속 운전은 ‘전환부문’에 포함됐다.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들어오려면 소형모듈원자로(SMR), 차세대원전, 핵융합 등 미래 원자력 기술은 물론,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사용, 방폐물 관리 등 안전성 향상을 위한 기술이 확보돼야 한다. 신규 건설과 계속 운전의 경우, 고준위 방폐물의 안전한 저장·처분을 위한 문서화 한 세부계획이 존재하고, 계획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 현재는 세부계획(제2차 고준위 방서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만 있고, 법률은 없는 상태다. 이 밖에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을 확보해야 하며, 방폐물 관리기금과 원전 해체비용을 보유해야 한다.
관건은 고준위 방폐장 건설 여부다. 환경부는 앞선 발표에서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부지 선정절차 착수 후 37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이번 발표에선 방폐장 건설 시점을 제시하지 않았다. 앞으로 법률만 제정되면 방폐장이 만들어지지 않아도 절차상 하자 없이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단 의미다.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세부계획과 법률이 있으면 녹색분류체계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방폐장 확보 연도는 수십 년 뒤가 되기 때문에, 건설된 이후에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핀란드와 스웨덴, 프랑스는 각각 2020년대 중반부터 2030년대 중반까지 방폐장을 건설해 가동할 예정이다. EU 차원에선 2050년까지 방폐장 가동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환경부는 초안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나,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는 큰 반향은 확정적이다. 조 과장은 “원전 포함 여부는 변경이 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며 “인정조건에 대한 세부적인 미세 조정은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