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 부회장은 16일 전세기를 이용해 영국에 도착했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6일부터 멕시코, 파나마 등 중남미 지역을 방문해 엑스포 유치 활동을 벌인 이 부회장은 영국에서도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만나 부산엑스포 유치 협력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8일(현지시각)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면서 총리와의 만남은 불투명해졌다. 대신 이 부회장이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고 재계는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1984년 현지 판매 법인 설립 이후 영국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대표적으로는 1995년 영국 윈야드 가전공장 준공식이 꼽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왕실 가족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해 공식 연설을 진행하고 생산라인 가동 스위치를 누르는 등 적극적으로 축하를 전했다. 여왕이 외국 기업 행사에 참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였다.
당시 여왕은 “삼성의 윈야드단지는 삼성과 이곳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상징하고 있다. 양국 간 경제협력의 새 장을 여는 윈야드 파크 준공을 공식적으로 선언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왕실은 2006년에 삼성전자를 왕실 TV 공급업체로 선정하고 냉장고와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 생활가전을 도입했다. 올해 5월에는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최고 권위 인증인 ‘퀸 로열 워런트’도 전달하는 등 높은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올 초 여왕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 냉장고를 출시하며 영국 왕실과의 깊은 인연을 부각했다.
삼성전자 영국법인도 여왕을 추모했다. 8일 여왕 서거 직후 홈페이지 배너에 영국인과 같이 비통한 심정이라는 추모 성명을 게시하며 여왕의 공헌을 기렸다.
이 부회장의 영국 방문에 영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인 ARM 경영진과의 만남도 주목된다. 이를 둘러싸고 삼성전자가 영국 팹리스 기업 ARM 인수 관련 행보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최근 중남미 사업장을 찾은 이 부회장이 “지금은 비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과감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미래를 개척하자”고 언급한 것을 두고 이번 출장에서 대형 인수합병(M&A)과 같은 중장기 전략을 구상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끊긴 삼성전자의 대형 M&A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업계에선 단독 인수보다 인텔 등 관련 업계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시도했지만, 독점 등 문제로 불발됐다는 점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업황이 지속 악화하는 데다 시스템반도체에서 글로벌 강자들에 밀리는 삼성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M&A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