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증한 무역수지 적자의 주요 요인이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수입단가 상승 때문인데, 당분간 높은 원자재 가격이 유지되고 경기 둔화로 수출은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과거 유가 급등기에 한국 수출 버팀목 역할을 했던 휴대폰과 디스플레이 등의 경쟁력 약화 등 구조적인 취약성도 커지고 있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기 힘들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왔다.
한국은행 조사국 국제무역팀은 6일 '최근 무역수지 적자 원인·지속가능성 점검'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글로벌 경기 둔화의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수출 둔화와 수입 증가에 따라 당분간 무역수지 적자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최근 무역적자는 원자재 수입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원자재 가격이 안정될 경우 우리나라 무역수지도 개선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10달러(연간 평균) 떨어지면 무역수지는 연간 90억달러 안팎 개선된다.
경상수지의 경우 무역적자가 지속되더라도 무통관 수출 증가, 본원소득수지 흑자 등에 힘입어 연간 흑자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최근 무역적자의 원인에 대해선 "대부분 수입단가 상승에 기인하며 중국 경기 부진 등에 따른 수출물량 둔화도 일부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올해 1∼8월 무역수지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4억 달러 줄었는데, 이 기간 수입단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 정도(-867억 달러)가 수출단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개선 폭(+395억 달러)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품목 가운데 원유·가스·석탄 등 에너지류와 정유 등 석유제품의 단가 요인이 무역수지를 353억 달러 끌어내렸다. 올해 무역수지 감소 폭(454억 달러)의 78%에 해당한다.
무역수지가 적자를 이어지는 건 중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 등으로 한국 수출 체력 자체가 약해진 영향도 있다. 과거 국제유가 상승 때마다 무역수지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휴대폰·디스플레이·선박·자동차 수출이 둔화했다.
유가 상승기였던 2011~2013년 에너지·광물 분야에서는 1647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반면 반도체(195억 달러)와 무선통신(199억 달러), 디스플레이(305억 달러), 자동차(613억 달러), 선박(403억 달러) 등에서 큰 폭의 흑자를 내며 무역수지는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1~8월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에너지·광물의 무역수지 적자는 2052억 달러로 불어났다. 반도체(629억 달러), 무선 통신(26억 달러), 디스플레이(174억 달러), 선박(147억 달러) 등의 흑자는 이를 충분히 만회하지 못했다.
자동차·반도체·스마트폰 등 주력 수출 품목의 해외생산 확대 등 수출구조가 변화한 것도 무역수지의 악화 요인으로 꼽힌다. 무역수지는 한국 국경을 넘나드는 물품만 집계된다.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해 현지에서 수출하는 물량은 잡히지 않아, 해외생산이 늘면 통관기준 수출액이 줄어들 수 있다.
주욱 조사국 국제무역팀 과장은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글로벌 교역 여건상 주력산업의 해외생산 확대가 불가피하더라도, 투자 여건 개선과 혁신 생태계 조성 등을 통해 국내 기반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