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들은 2019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기고한 논문에서 “기후변화의 악화가 미래 폭력적인 분쟁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당 논문 주요 저자인 캐서린 마흐는 “빈곤과 정치 불안정, 범죄 등 한 사회가 받는 스트레스 요인은 가뭄과 홍수, 또는 폭염의 증가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당 논문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이 줄지 않으면 기후와 관련된 폭력적인 분쟁이 5배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린스턴대학과 UC버클리 연구원들은 연평균 기온이 1℃ 오르면 그해 내전이 4.5%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시리아 내전을 놓고 미국 국방부는 2015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당시 50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이 내전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고 분석했다. 가뭄에 경작할 수 없게 된 많은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사회 불안정이 고조됐고 이는 시민 봉기와 뒤이은 내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시리아 난민의 물결이 중동과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국가의 정치 질서를 뒤흔들게 됐다. 특히 농업과 축산업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전쟁 가능성에 취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수단 내전을 현대 기후변화로 인한 전쟁의 첫 번째 사례로 꼽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강우량의 감소에 따른 사막화로 물과 식량 공급이 불안정해진 것이 수단 정부가 폭력적으로 대응한 반란을 유발했다고 분석했다.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담수호였던 아프리카 차드 호수는 20세기 말 10년 동안 지속된 가뭄으로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해 해당 지역에서의 대립과 갈등을 눈에 띄게 증가시켰다. 이 호수는 니제르와 나이지리아, 카메룬, 차드 주민에게 생명의 원천이었다.
네이선 넌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1989~2018년 약 30년간 내전으로 123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 기간 연간 강우량은 역사적인 평균치보다 훨씬 낮았고 가뭄은 더 흔했다. 넌 교수는 “아프리카 인구의 22%에 해당하는 약 2억6800만 명이 수입을 목축으로부터 얻는다”며 “기후변화가 촉발한 가뭄으로 농부와 목축업자들이 부족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면서 폭력적인 충돌이 촉발됐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서는 과거를 능가하는 기후 재난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 서부는 1200년 만의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유럽은 폭염과 대형 산불, 폭우가 잇따라 발생해 인명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중부지방도 8일 80년 만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져 주택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이 숨지는 등 비극이 벌어졌다.
이렇게 자연재해만으로도 끔찍한데 이것이 전쟁으로 이어진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또 선진국마저 이상 기후로 식량과 자원 쟁탈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더 가난하며 경제적으로 취약해 기후 재난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인 ‘핵무장 국가’ 북한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2009년 홍수가 일어났을 당시 예고 없이 황강댐을 방류해 우리나라 국민이 숨지는 피해를 끼쳤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재앙이 올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근을 못 견딘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난민이 돼 한국과 중국으로 쏟아질 수 있다. 북한이 핵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에 더욱 집착할 위험도 있다.
결국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전쟁이라는 최악의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다툼이 벌어지기 전에 행동에 나서자.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