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이 올해 안에 어려울 전망이다. 가장 중요한 절차인 국회 보고 일정조차 잡지 못했고 정부 부처 내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강해서다. 정부는 가입 신청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 농수산업계와 소통에 집중할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4일 통화에서 CPTPP 가입 신청 추진과 관련해 "국회 보고 일정이 현재는 안 잡혀 있다"며 "농업계와 수산업계의 우려가 굉장히 커 그 부분에 대한 소통 진행 상황을 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CPTPP는 문재인 정부에서 가입을 추진했던 경제협력체로 일본, 호주 등 11개국이 참여 중이다. 규모만 인구 5억 1000여 명, GDP 규모 10조 8000달러에 달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가입 추진을 약속한 중요한 다자 협력체다.
정부가 국회 보고 일정을 잡지 않고 있는 이유는 농수산업계의 반발 탓이다. 농수산업계는 CPTPP 가입으로 시장이 더 개방되면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투데이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가 예상한 농산물 관세철폐에 따른 피해액은 연평균 853억~4400억 원에 달한다. 해양수산부가 예상한 피해액도 15년간 연평균 69억~724억 원이다.
최근 지역별 농수산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4월 가입 신청을 추진했지만, 무산된 이유도 농수산업계와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회 보고 일정조차 잡히지 않으면서 연내 CPTPP 가입 신청은 불투명해졌다. 부처 내부에서도 CPTPP 가입에 부정적인 기류가 커지면서 논의가 뒤로 밀린 모양새다.
정황근 농림부 장관과 조승환 해수부 장관도 지난 5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CPTPP 가입과 관련해 농수산업계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농림부도 CPTPP 가입 피해와 관련해 "농업 분야 피해를 우려하는 농업인들의 입장을 관계부처에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수부 역시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취지는 이해하나 수산업과 같은 취약산업은 수입 확대에 따른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국회 일정을 고려해도 연내 가입 신청은 어렵다. 당장 결산심사가 진행 중이고 9월 정기국회에선 예산안이 논의된다. 10월에는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12월엔 예산안을 확정한다. 농수산업계의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CPTPP 가입을 연내 신청할 이유도 없다.
정부는 마감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 농수산업계와 소통에 주력할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보완 대책을 다시 보강하고 있다. 상황을 보면서 다음 단계를 밟을 예정"이라며 "지난번에 데드라인을 정해서 4월 중 신청을 하겠다고 한 것 때문에 (농수산업계와) 소통이 다 막혀버린 상황이라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는 건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농림부와 해수부도 자체적으로 업계와 소통을 이어갈 예정이다. 농림부는 지난해 12월부터 농업인단체, 학계, 언론 등과 38회 소통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농정협의회와 온·오프라인 간담회, 면담 등을 통해 소통을 추진 중이다.
해수부 역시 지난 6월부터 CPTPP 등 FTA 관련 권역별 어업인 설명회를 통해 전국을 돌며 수산업계와 소통을 진행했다. 8월부턴 어업인 대상으로 CPTPP 관련 설명회를 개최했고, 30일엔 태안 9월 중엔 보령과 여수, 완도, 목포를 찾아 지역별 현장설명회를 진행한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산물 수입국의 입장에서 국내 농업 분야 피해 최소화 원칙 아래에 협상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국내 농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신중히 협상을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해수부 관계자도 "구체적 가입신청 시점을 정해놓지 않고 농어업인과 소통을 거쳐 일정을 구체화해 나간다는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CPTPP 가입 추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어업인에 대한 충분한 피해지원과 함께 식량 공급원으로서 국내 수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