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금융지주ㆍ화성산업ㆍ에코프로비엠 약발 안 먹혀…이유는 실적ㆍ테마 등 복합적
최근 2개월간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기업들의 주가 향방이 엇갈렸다. 하락장 속에서 기업들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지만 14곳 중 7곳의 주가는 공시 이후 하락했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6월부터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자사주 소각을 공시한 상장사는 총 14개(코스피 9개, 코스닥 5개)다. 지난해 같은 기간(코스닥 7개)보다 2배 많은 기업이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올해 6월은 전 세계 대표 주가지수 40개 중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의 하락률이 가장 높았던 달이었다. 이때 금리 상승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인한 약세장이 지속하자 주가 부양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상장사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자사주 소각은 시장에서 호재로 여겨진다. 발행 주식 수가 줄어 주당 가치가 오르기 때문에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소각까지 돼야 향후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등의 우려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자사주 취득이 곧 소각으로 이어져야 기업이 저평가됐다는 신호를 강화할 수 있고, 지배주주의 자사주 남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취재 결과, 14개 상장사 중 자사주 소각 공시 이후 주가가 상승세를 보인 종목은 7개였다. 실리콘투는 37억 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6월 24일 상한가를 기록했고 다음 날까지 30.79% 급등했다. 일주일 후에는 공시 전일 종가 대비 58.94% 올랐다.
한라는 지난달 28일 총 발행 주식 수 중 3.72%에 달하는 우선주를 소각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한 주간 7.94% 상승했다. 이외에 엔에이치엔(2.44%), 락앤락(4.04%), 테크윙(5.17%), 피에스케이(6.75%) 역시 공시 후 일주일간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자사주 소각 공시 이후 주가 부양 효과가 뚜렷하지 않거나 오히려 주가가 하락한 기업들 역시 7곳이었다. 화성산업은 올해 6월 28일 자사주 230만800주(약 545억 원)를 소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시 전날 1만8100원이었던 주가는 일주일 뒤 6.9% 하락한 1만68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화성산업 측은 “최근 몇 년간 경영진들이 회사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에 적극적으로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고자 지난해에 자사주를 매수하고 올해 6월 소각을 결정하게 됐다”며 “작년 주가와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주가 부양 효과가 나타났다고 (내부에서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원자재 인상으로 건설업계 종목의 주가 낙폭 수준이 높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화성산업의 현재 주가는 자사주 소각 공시 등에 따라 주가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499억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다음 날, 주가는 공시 전날 종가보다 6.51% 하락했다. 일주일 후에는 11.69%로 낙폭이 커졌다. 에코프로비엠은 공시 다음 날 주가가 4.71% 떨어졌고, 일주일 후에는 13.03% 하락했다. 이외에 메리츠증권(-1.35%), 메리츠화재(-7.4%), KB금융(-1.75%), POSCO홀딩스(-1.36%)도 공시 후 일주일 동안 주가가 내림세였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소각이 주가 상승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자사주 소각 이후 주가 변동의 이유를 명확히 평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종우 경제 평론가는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높아진 상태에서 (자사주 소각을 하면) 주가가 떨어질 수도 있고 실적이 좋지 않으면 소각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며 “가장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 점은 기업의 펀더멘털”이라고 강조했다.
소각률이 18.48%에 달하는 자사주 소각 공시에도 주가가 하락한 화성산업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총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영업손실 규모도 8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적자 전환했다.
그러나 기업의 실적도 주가 향방을 결정하는 명확한 잣대는 아니다. 자사주 소각 공시 직후 주가가 급등했던 실리콘투는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올해 2분기 매출액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2.24% 줄었다. 자사주 소각 공시 일주일 후 주가가 18.01% 올랐던 라온피플 역시 2분기에는 4억8935만 원의 영업손실을 보였다. 라온피플은 소각 공시 이후 무상증자 권리락이 실시 돼 주가가 하향 조정된 바 있다.
이 평론가는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테마부터 최악의 경우 주가 작전 세력의 움직임 등 다양하다”며 “외부의 악재가 있는 상황이라면 실적이 좋아지고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고 해도 주가는 올라가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식을 소각하면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 가치가 올라가는 것에 따른 기계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라면서도 “(소각) 행위 자체가 그만큼 기업 펀더멘털이 탄탄하고 미래 가치가 충분한 기업이라는 시그널을 줄 수 있고 이런 경우에는 플러스 요인이 된다”라고 했다.
그는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과 같은 일회성 이벤트에 얽매여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은 아니다”라며 “전반적인 경제 상황, 이슈, 기업 실적 등 회사에 영향을 주는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자사주 소각에 따라 주가가 상승할지 판단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어 “소각 이후 주가가 내려갔더라도 자사주 소각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선방을 한 수준일 수도 있다”며 “비슷한 업종의 기업들과 주가를 비교해보는 것도 자사주 소각의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