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과 같은 고(高) 인플레이션 국면에선 물가와 임금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현상이 더 뚜렷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른 고물가 상황 고착화를 막기 위해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우려하는 임금인상발 인플레이션 고조 현상이 연구결과로 증명됨에 따라 향후 기업들의 노사협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물가-임금 관계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1분기~2022년 1분기 기준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포인트(p) 오르면 임금 상승률이 4분기 이후부터 0.3%~0.4%p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임금상승률이 1%p 오르면, 개인서비스물가는 4~6개 분기 이후 0.2%p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가와 임금 간에 시차를 두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한은은 “최근 연도의 물가상승률은 다음 해 임금상승률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라며 “임금상승은 인건비 비중이 높은 개인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이 임금상승을 통해 실제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연결되는 악순환 역시 통계적으로 확인됐다.
특히 '물가-임금' 관계는 고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와 임금은 1970년대 각각 연평균 15.1%, 24.9%, 1980년대 8.4%, 13.7% 상승한 후 2000년대 들어 2.3%, 5.3% 상승하면서 오름세가 점차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임금상승률은 대체로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흐름을 유지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고인플레이션 시기에 물가와 임금 간 상호작용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1970~1980년 중 물가와 임금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쇄적인 상승 흐름을 나타냈다.
한은은 최근 20년에 비해 물가상승률과 임금상승률이 높았던 1990년대를 대상으로 ‘임금→물가’ 영향을 추정했다. 그 결과 1990년대를 포함할 경우 임금상승률과 다음 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간의 상관계수가 훨씬 크게 나타났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최근 15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실증연구에서도 고인플레이션 국면에서의 ‘임금→물가’ 영향은 저인플레이션 국면보다 2배 정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와 같이 물가오름세가 높고 기대인플레이션도 상승하는 시기에는 기업들이 원가상승 요인을 가격에 전가하는 정도가 커지는 것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한은은 분석했다. 실제로 물가상승국면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가격인상 품목의 비중도 커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한은은 “최근과 같이 물가 오름세가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는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선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확산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만나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한은의 연구결과에 따라 정부의 임금인상 억제에 대한 의지는 더 강해질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