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ngers of Overpromising and Under-Delivering(과장된 약속과 그에 못 미치는 결과의 위험)’은 약속의 이해관계자 모두, 특히 일하는 사람들은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다. 최근에 특히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영역의 일들이 많이 생기면서 ‘믿었는데 바보같이 당했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데, ‘약속했으면 지키겠지’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누군가를 믿고 투자했거나 열심히 일했던 이들의 속상함이다.
약속 이행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천재지변에 가까운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거나 초기에 서로의 기대수준을 또렷하게 정의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다’로 슬쩍 넘어갔거나, 슬프지만 누군가 대놓고 공수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하기로 한 만큼 못해 내는 건 자기 자신과의 약속에서도 자주 벌어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과한 약속 자체가 문제일까, 잘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으나 해내지 못한 역량이 문제일까. ‘전 최선을 다했어요. 오버해서 기대한 건 당신 책임인데 뭘 더 원하는 거죠?’, ‘제가 언제 그랬어요, 설마 그걸 다 믿으셨어요?’, ‘전 제 입장에서만 이야기한 거죠.’,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고요.’ 등 여러 영역에서 가지각색 오리발이 둥둥 뜬다. 약속을 둘러싼 맥락에 대한 배려 없이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말들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내 기준에 이건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런 결과를 들이밀 수 있지?’, ‘뭐가 문제야?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들로 불만을 표하는 입장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문제의 본질보다 자신의 경험치로만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서로의 불신은 점점 커지고 진심을 다해 약속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박탈감과 상실감까지 느끼게 된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이들 중 어떤 일의 일부만 담당했음에도 프로젝트 전체를 본인이 한 것이라 말하는 경우를 종종 만나는데 이들과의 약속은 결과예측이 어려우므로 매우 위험하다. ‘할 수 있다, 없다.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그리 어려운가.
누구와라도 ‘약속’을 해야 한다면 동기와 의도, 목적과 목표, 정확하게 무엇을 어떻게 지킬 건지, 행여 다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어떤 페널티를 감당할지 역할과 책임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해당사자가 합의해 명시할 필요가 있겠다.
한 해의 반이 접히고 새로운 반이 펼쳐지려는 요즈음 지인들의 SNS에서 공통된 ‘시름’을 발견했는데 ‘코로나 후유증인지 예전엔 안 그랬는데 집중력도 약해지고 하던 일도 마뜩잖고 상태가 영 별로다. 일정이 꼬여서 난감하다. 생전 처음 하기로 한 일을 펑크냈다. 괴롭다’는 자기 상태에 대한 걱정과 반성이다. 늘 열심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신뢰를 쌓아 온 이들은 예전 같지 않은 컨디션에 일을 그르칠까 불안해한다. 약속한 만큼 해내려면 심신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요즘 주변의 에너지 레벨이 위태로워 보인다. 코로나 기간 저전력 에너지로 가동되던 스스로를 시험기간 없이 풀가동 모드로 변환했기 때문이 아닐까. 물리적 이동이든,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이든 모두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니 올여름은 장마나 폭염보다도 ‘과부하주의보’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다.
우리 스스로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적정 가능목표를 설정하는 리셋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대놓고 지키지 않을 약속보다 진심으로 무엇을 잘해보고자 하는 이들이 더 많다고 믿고 내가 나에게 지킬 수 있는 약속부터 제대로 다시 잡아보자. 소신껏 약속하고 지키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