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타트업, 직원이 누워자는 걸 자랑하는 이유

입력 2022-06-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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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리 IT중소기업부 기자

올해 초, 한 핀테크 스타트업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였다. 회사 라운지에 들어가자마자 빈백에 드러누워 자는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쿨쿨’ 작게 코도 골았다. 대낮에 회사 라운지에서 자고 있어 다소 놀랐지만, 내게 회사를 소개하던 이사님은 자랑스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기자님, 이거 보세요. 저희 회사는 이렇게 자유롭습니다!”

당황해서 얼버무린 농담이 아니라, 수평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말임이 느껴졌다. 처음에 그 모습을 보고 놀랐던 내가 ‘젊은 꼰대’처럼 느껴졌다. 그 직원은 미팅을 마칠 때까지 계속 빈백에 누워 있었다.

요즘 스타트업은 너도나도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자랑한다. 재택근무는 물론, 허가 없는 연차 사용, 장기간 리프레시 휴가, 휴가지에서 일하는 워케이션 등. 직장인들을 괴롭히는 회식, 음주 강요는 전혀 없다. 내세우는 복리 후생도 화려하다. 수백만 원대 입사축하금을 제공하거나, 의자계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허먼 밀러 의자를 보내주고, 전 직원에게 법인 카드를 나눠주는 곳도 있다.

자율과 수평의 IT 스타트업 문화는 1980년대 실리콘 밸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리콘 밸리에 아직 빌딩보다 자두나무가 많던 시절, 게임 회사 아타리는 말썽꾸러기 공대생이었던 창업자 놀런 부슈널의 영향으로 회사 내에서 맥주와 게임, 대마초까지 피울 정도로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자랑했고, 당시 기술 인재들을 빨아들였다.

오늘날 한국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기업 문화와 복지 경쟁에는 인재 영입과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한 고민이 어려 있다. 능력 있는 IT 개발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두터운 복지는 필수다. IT 대기업처럼 마냥 연봉을 높여주며 ‘금융치료’를 제공하기는 어려우니, 즐겁게 일하고 싶은 회사로 만드는 것이 최선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수익도 내지 못한 스타트업이 벌이는 복지 경쟁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스타트업 생태계에 많은 돈이 쏟아졌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 경기 침체의 여파가 벤처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다. 이미 실리콘밸리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고, 국내 시장도 조금씩 쪼그라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한국은 모태펀드 등 정책 자금이 두텁고, 여전히 시장성이 높은 알짜 벤처에는 돈이 몰리고 있다. 스타트업 간 복지 경쟁이 한때의 열풍일지, 업계의 표준이 될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ing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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