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도대체 어디다 투자를 하란 말인가"

입력 2009-03-10 18:02 수정 2009-03-1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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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투자 재촉 압박에 기업 스트레스 받는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최근 주요 재벌 총수들과 1대1 개별 회동을 갖고 투자와 고용확대를 요청하고 나서자 재계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대기업 투자확대 요구에 이어 정부까지 본격적으로 나서서 대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최근 돌아가는 경제 상황이 투자를 늘릴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투자 확대 요구가 기업들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업의 경영활동에 정치적 압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당초 '기업친화적' 정부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MB정부가 기업에게 경기 침체를 해결하라는 부담감만 주는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10일 지경부에 따르면 이 장관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만났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회동하는 등 10여곳의 주요 재벌그룹 총수들과 만나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관은 또 12일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장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회동을 하고 투자 및 일자리 확대 등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계획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전경련 방문을 시작으로 재계 주요 단체와 인사들을 차례로 접촉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의 파격적인 움직인은 대기업들이 일자리 나누기와 투자 확대에 나서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박희태 대표는 "국회가 대표적인 기업 규제인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없애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으니 대기업도 금고문을 활짝 열어달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투자 활성화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파상공세에 가까운 움직임에 대해 재계에서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임직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 당초 계획보다 늘어난 정규직 채용 등 투자와 고용 확대를 위한 자체 노력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의 이같은 움직임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생존이 최대 과제인 불확실한 시기"라며 "생존을 전제로 최대한의 투자와 고용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확대를 하라는 것은 생존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현금성 자산에 대한 얘기도 할 말은 많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이 71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주요 기업들의 대여금이 87조원에 달하고 이 중 1년 내 돌아올 단기 부채가 51조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A그룹 한 관계자는 "수출 감소로 공장 가동률이 감소한 상황에서 어디다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건지 알려주면 좋겠다"고 반문했다.

이러한 상황은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조선업계도 마찬가지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선박발주가 거의 없고 이에 따른 수주가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 운영을 위한 현금을 보유할 수 밖에 없다"며 "불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현금을 풀어 투자를 확대하라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회사채 발행 시장이 극도로 얼어붙은 상황에서 현금확보는 기업의 생존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무작정 투자를 확대하기 보다는 정부 투자와 연계해 시기를 적절히 조정, 효과를 극대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가 예산의 70% 가량을 상반기에 집중 투자하는 만큼 하반기의 안정적인 투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 경기침체로 인해 수출, 원·달러 환율 등 각종 지표들이 더욱 악화되고 있어 예정된 투자를 추진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단순한 투자 확대보다는 정부 투자와 연계해 앞으로 투자계획이 차질없이 집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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