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지난 금리 인상 사이클이었던 2018년의 1.75% 수준을 기준금리의 고점으로 예상했으나, 미국의 빨라진 금리 인상을 반영하면서 현재는 연내 2%를 넘는 수준까지 기준금리가 인상될 것이라는 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지속적으로 예상보다 빨라지는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행보에 투자자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단순히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는 것을 넘어서 과거에 보기 어려웠던 빠른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게 되면 실물 경기의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 이사들은 여전히 매파적인 코멘트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 침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물가를 잡기 위해 일정 수준의 실업률 상승은 용인하겠다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과거 성장 둔화 우려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경기 부양에 힘을 쏟았던 연준이 왜 이렇게 크게 바뀐 것일까?
답은 4월 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코멘트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파월 의장은 1980년대 인플레이션을 제압했던 폴 볼커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볼커 전 의장은 두 마리의 용과 싸웠다는 말을 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높은 물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물가 상승세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심리, 즉 기대 인플레이션이다. 물가가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된다면 사람들은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당겨서 진행하게 되는데, 이 경우 현재 불안한 물가 레벨이 더욱더 높아지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단순히 현재의 물가 상승세가 더욱 강해지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면 한동안 사라졌던 인플레이션이라는 고질병이 생겨나게 되는 것인데, 괜찮은 듯하다가도 경제가 조금이라도 무리를 하게 되면 어김없이 재발하게 된다. 필자는 의학은 잘 모르지만 일부 성인병의 경우 한번 고질병이 되어 버리면 완치가 되지 않고, 현재 상황이 조금 나아지더라도 언제든 무리를 하면 다시금 재발에 재발을 거듭한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인플레이션이 고질병이 되면 당장의 인플레이션을 꺾어버리더라도 언제든 약간의 경기 부양책, 혹은 공급망의 불안 이슈가 불거지면 바로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1980년대 폴 볼커의 강한 긴축 정책으로 10년 이상 이어져왔던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기운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의 강한 경기 부양과 공급망의 불안은 그런 인플레이션의 부활을 만들어냈고 이런 현상이 장기화한다면 기대 인플레이션의 고착화 가능성 역시 생겨나게 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단기로는 매파, 중장기로는 비둘기파가 되고 싶다는 코멘트를 한 바 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는 향후에도 많은 저성장의 암초를 만날 수 있다. 이때는 강한 경기 부양이 필요한데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해 있다면 과감한 경기 부양 시기마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그런 부양책의 부작용이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지금 매파적인 스탠스를 갖추고 인플레이션을 제압하면, 그렇게 해서 인플레이션의 고착화를 막는다면 이후의 금리 인하 등의 부양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적시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연준 역시 마찬가지 이슈라고 본다. 실물 경제의 성장이 일부 둔화할 가능성을 연준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매파적인 스탠스를 이어가는 이유는 중장기적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제압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당장의 긴축 행보가 시장에 일부 부담 요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일종의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빠르게 바뀐 연준의 스탠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