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익’
듣기만 해도 청량감을 주는 탄산음료의 탄산 빠지는 소리를 듣기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 때아닌 탄산·설탕 대란 때문이다.
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최근 “탄산(CO2) 부족으로 인해 관련 업계는 생산 차질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탄산 제조사는 탄산을 제대로 출하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원인은 고유가 때문이다. 탄산은 정유 및 석유화학제품의 제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원료탄산에서 만들어진다. 탄산 제조업체는 석유화학업체로부터 원료탄산을 공급받고 이를 정제하고 액화해 공급한다.
이 원료탄산이 주로 나프타(중질 가솔린)를 통한 수소 제조 시에 다량 생산된다. 그런데 최근 국제유가가 연일 치솟으며 수소 제조에 나프타 대신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비중이 늘어나 원료탄산 생산이 5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석유화학사들이 3월부터 정기 플랜트 시설 정비와 보수에 나서면서 생산 일정도 지연되기 시작했다.
연합회는 국내 탄산 생산 능력은 월평균 8만3000t 수준이었으나 5월은 30% 수준인 2만4470t, 6월은 20% 수준인 1만5430t만이 생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탄산 대란에 일조했다. 비대면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며 신선식품 배송이 급증해 탄산으로 만드는 드라이아이스 수요가 함께 늘어나면서 탄산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탄산은 음료·드라이아이스 같은 식품 부문뿐만 아니라 반도체, 철강, 조선, 제지, 의료, 폐수처리 등 다양한 산업에서 두루 쓰인다. 이 때문에 ‘탄산 대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심승일 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탄산 부족 현상이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며 “정부와 업계가 나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식음료 업계는 과한 우려가 기우라는 입장이다. 탄산 비축량이 충분한 데다가 정유·석화 기업들이 서둘러 시설 보수를 마무리할 예정이라 7월부터는 탄산 생산량이 예전 수준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료탄산 생산이 줄어들면서 가격 불안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탄산음료의 주재료 중 하나인 설탕 공급에도 차질이 예고됐다. 밀 수출 제한 조치를 내렸던 인도가 설탕 수출 제한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음료를 비롯해 설탕을 사용하는 대다수의 식품 가격 상승도 불가피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올해 설탕 수출량을 1000만t으로 제한하고 6~10월 동안 설탕을 해외로 반출할 때는 반드시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이자 브라질에 이은 설탕 세계 2위 수출국이다. 이번 조치는 설탕 수출 증가에 따른 국내 가격 상승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인도 정부가 식량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으며, 축제 시즌 설탕 공급을 원활히 하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발표된 후 런던 선물 거래소 백설탕 선물 가격은 1% 이상 올랐다고 한다.
설탕 가격 상승과 탄산 부족이 이어진다면 음료 가격 상승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펩시콜라 최고재무책임자 겸 부회장인 휴 존스턴은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순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