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 여야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선거일이 코 앞 인만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중도층의 표심을 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날 추도식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필두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여야 지도부, 정부 주요인사와 진보진영 인사 등이 일제히 집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정 때문에 추도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애도 메시지를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윤 대통령은 용산 집무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노 전 대통령 추도식 관련 질문을 받고 “한국 정치의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행사에 대신 참석한 총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는 질문에는 “권양숙 여사를 위로하는 말씀을 담았다”고 답했다.
문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기념관인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전시관’을 둘러봤다. 체험관 방명록에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당신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문 전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과 비공개 오찬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는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윤호중·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이날 추도식을 계기로 지지층을 결집해 수세에 몰린 6·1 지방선거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세균 전 총리는 추도사에서 “특권과 반칙을 배격하고 원칙과 상식을 기반으로 정의로운 나라, 시민이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이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은 직접 선거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최근 대선 패배 후 기운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뉴스도 보기 싫다는 분들이 많다”며 “그럴수록 더 각성해 민주당을 키워나갈 힘을 모아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의 꿈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윤석열 정부 주요 인사들과 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해 ‘성의’를 표하는 한편 ‘국민통합’을 앞세워 중도층 표심을 파고들었다.
국민의힘에서는 이준석 당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정미경 최고위원 등이 참석했다. 정부 측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이 자리했다. 당 대표는 2020년부터 3년 연속 추도식에 참석했지만, 원내대표가 나란히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정부와 대통령실 인사들까지 총출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권의 이 같은 행보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이어 ‘노무현 정신’을 잇는 통합의지를 강조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강경 보수 정당의 이미지를 누그러뜨리고 지지층을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이날 추도식을 마친 뒤 권 여사를 예방해 “협치의 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시는 일도 소홀함 없이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국민의힘은 노 전 대통령이 소망했던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여야가 함께 일하는 협치를 반드시 이룩하겠다”며 “삼가 고인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하며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고인의 문구를 들어 “어떤 반대에도 국민통합을 우선 가치에 뒀던 노 전 대통령의 용기를 가슴에 되새기겠다”고 강조했다.
1만여명이 넘는 지지자들은 이날 야당 인사들이 입장 할 때는 환호했고, 여당과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야유를 보냈다.
봉하=김벼리 정일환 이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