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17시간 30분 만에 마무리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스카이캐슬’을 떠올리게 하는 한 후보자 장녀의 ‘스펙 쌓기’를 집중 추궁했지만 후보자 흔들기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검찰의 ‘흑역사’로 거론된 ‘96만원 검사 접대’와 ‘유오성 간첩조작사건’ 등에 대해선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해 검찰 출신 후보자에 대한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9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한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밤을 넘어서 10일 새벽 3시 30분이 돼서야 종료됐다. 첫날 오전에는 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자료제출 여부를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했다.
야당인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후보자 친모가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데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는지 확인해 봐야 하고 탈세 혐의도 의심된다”며 “모친의 부동산 소유 내역과 임대사업자 등록 여부를 알 수 있는 증빙서류, 세금신고 내역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민형배 의원도 “(답변서에) 처음에는 부동산 다운계약서가 없다고 했는데 두 번째 질문에서는 있다고 했다”며 “그 내용을 제출해줘야 하는데 개인 사생활을 이유로 제출을 거부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여당인 국민의힘이 방어에 나섰다. 김형동 의원은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도 청문회 때 자녀 병역, 부동산 거래 내역 등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며 “민주당 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는 대부분 관계없고 ‘고발사주 사건’ 기록 일체 등 제출이 불가한 황당한 자료도 상당하다”고 받아쳤다.
본질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야당 의원들은 한 후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자가 사용한 ‘검수완박’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은 ‘수사권-기소권 분리’가 맞는 표현으로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완전히 빼앗는다는 의미의 검수완박은 올바른 용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후보자는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검수완박 법안에 국민적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실제 국회를 통과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수완박 법이 아니다. 실제와 다르다”며 “실제와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런 용어를 사용함으로서 정치적인 선동한다거나 여야 간 갈등을 고조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저는 한 후보자가 능력이 있다고 보지만 능력만 가지고 하는 게 정치는 아니다”라며 “(민주당이 한 후보자가 사용한) 검수완박 용어를 문제 삼은 게 그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굳이 검수완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정치적 논란을 빚을 필요가 있냐는 취지다.
김종민 의원은 “한 쪽을 대변하는 선동하는 용어(검수완박)를 써서 맞서 싸우겠다, 내 뿌리는 광화문이니까 서초동과 만나 (싸우겠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에 한 후보자는 “제 뿌리는 꼭 광화문은 아니다”라며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잘 새겨 듣겠다”고 말하며 자세를 낮췄다.
한 후보자 장녀의 스펙 쌓기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앞서 ‘한겨레’는 케냐 출신 대필작가가 한 후보자의 딸 논문을 작성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한 후보자의 딸은 지난해 11월 오픈액세스 저널인 ‘ABC Research Alert’에 네 페이지 영문 논문을, 이듬해 2월에는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SSRN(사회과학네트워크)’에 동일한 논문을 개제했다. 해당 문서정보에서 지은이는 ‘벤슨’으로 쓰여 있어 벤슨이라는 사람이 한 후보자 딸의 논문을 대신 작성해준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뉴스타파가 논문 표절 검사 프로그램 ‘카피리크스’을 통해 검사한 결과, 한 후보자 딸과 (다른 사이트에 올라간) 에세이간 논문 유사성은 56%가 넘는다"며 "인터넷에 있는 글을 (논문으로 써서) 저널에 싣고, 지금 (의혹이 제기된 뒤) 저널의 글을 삭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한 후보자의 딸이 그의 사촌들과 비슷한 스펙들을 쌓았다고 지적했다. 봉사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외할머니 도움으로 전시회를 주최‧공동 참여했다는 점이다. 또한 ‘오픈액세스’ 저널에 논문을 등재한 것 역시 스펙 쌓기 방식이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한 후보자는 ‘(이렇게 쌓은 스펙으로) 입시에 지원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장난”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굳이 왜 대필까지 하고 논문을 표절해 스펙을 쌓고 상을 받았을까”라며 “(사촌) 언니들이 갔던 길을 그대로 가기 위한 것 아니겠나라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고 추궁했다.
한 후보자는 논문에 대해 “실제로 보면 조악한 수준으로 입시에 쓸 수준도 아니고 쓸 계획도 없다”며 “딸이 쓴 내용의 글로 학계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약탈적 학술지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과하다”고 반박했다.
늦은 시간까지 야당 의원들은 ‘장녀 스펙 쌓기’를 따져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입시에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취지로 방어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도 “조국 전 장관의 자녀는 인턴을 했다며 허위 증명서를 만들어내고 조작된 서류를 내서 대학 전형에 합격해 다른 학생이 피해를 봤다”며 “한 후보자의 자녀가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나”라고 두둔했다.
한 후보자가 연루된 ‘채널A 사건’도 거론됐다. 2020년 채널A 기자가 한 후보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진보 인사의 비리를 알려달라’며 폭로를 강요했다는 보도로 알려진 사건이다. 검찰은 이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기소했지만 한 후보자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 끌어왔다. 한 후보자는 자신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검찰은 포렌식을 하지 못했다. 한 후보자는 이 사건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얼마 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김종민 의원은 “채널A 사건 수사에서 (한 후보자는) ‘나의 기본권’이라며 핸드폰을 안 열었다”며 “기본권을 행사해 불리한 진술을 안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국민들도 그런 사람을 공직에서 배제하거나 파면할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그런 판단을 내린다”고 압박했다.
이어 “채널A 수사와 관련해서 여러 정황증거가 많은데 마지막 한 고리가 안 풀린 것”이라며 “만약 떳떳하다면 그걸 공개해야 하는데 공개를 못 한 이유가 한 후보자를 정치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수사이기 때문에 못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수사 주체인 검찰을 믿을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추궁했다.
한 후보자가 “그렇다”고 하자 김종민 의원은 “특검에 맡겨서 그 휴대폰 좀 봤으면 좋겠다”며 “특검이 공정하게 보고 문제가 없다고 하면 누명을 벗으면 된다. 그 다음에 법무부장관을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물었다.
한 후보자는 “그 사안은 실체가 없는 사안”이라며 “오히려 저에게 누명을 씌우려 한 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고 맞섰다. 이어 “다 무혐의, 무죄가 났음에도 ‘네 휴대폰을 무조건 까라’는 이야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검찰 출신인 후보자를 향해 야당 의원들은 그간 검찰의 ‘오점’으로 불린 사건들을 거론했다. 그러나 한 후보자는 개선 의지를 드러내기 보다는 “저는 잘 모르는 내용”이라며 거리를 뒀다.
김남국 의원은 서울남부지검 고 김홍영 검사가 부장검사의 괴롭힘과 폭력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을 언급했다. 한 후보자는 “사건 자체는 대단히 안타깝다”면서도 “처음부터 바로 사건화 되지 않았던 것은 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결국은 기소돼 재판 진행 중이니 결과를 잘 봐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김 의원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된다”며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검찰 내부 문제와 관련된 감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2019년 검찰이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술과 향응을 접대 받은 검사들을 불기소 처분하고 징계도 내리지 않은 사건도 떠올랐다. 당시 이들은 위법 기준인 100만 원에 못 미치는 96만 원에 상당하는 접대를 받았다는 이유로 처벌에서 벗어났다. 이를 두고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한 후보자는 “그 사안 내용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비판이 있었던 것은 안다”며 “그런 지적에 대해 저희가 깊이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