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현실에 대한 치열한 토론은 ‘선택’의 문제,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분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경제학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시위의 방식에 대한 합리성을 논하거나, 장애인 이동권 관련 복수의 정책에 대한 우선순위를 논했던 것은, 합리성(rationality)의 가정하에서 선택의 문제를 풀어가는 주류 경제학의 접근방식과 그 결을 같이했다. 합리성에 기반한 경제학적 논의의 한계도 심각하게 고민되어야 할 문제이겠지만, 그것은 잠시 차치해 두고, 여기에서는 토론 내용의 합리성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권리를 위임받아 정책을 결정한다.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동시에, 최종 정책 선택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들의 의견이 워낙 다양하여, 하나의 정책 선택은 ‘그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다른 정책의 가치’를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으로 발생시키기 마련이다. 그만큼 어려운 정책 선택의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준석 대표는 정책의 우선순위 결정과 선택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박경석 대표의 이해를 요구했다.
박 대표가 소속된 전장연은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약자들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하여 조직된 시민단체이다. 그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관련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마치 “가족과 연인이 동시에 물에 빠졌는데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의 질문과 같은 것이다. 많은 이들이 가족과 연인을 모두 다 구하고 싶은 것처럼, 전장연이 ‘도시 간 교통수단’과 ‘특별교통수단’을 모두 보장받고자 하는 것은 상당히 자연스럽고도 간절한 것일 것이다. 그런 그들을 정책 우선순위 결정의 필요성으로 설득할 수 있었을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니, 시위 없이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으로 설득이 될까? 이러한 요구는 합리적인가?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시민들은 투표를 통하여 정책 결정을 할 정치인들을 선출할 권리를 가지고, 이 행위는 정책 결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쉽게 간과될 수 있는 것이 소수의 의견이다. 모든 것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된다면, 소수자들의 의견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때문에 ‘문명화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이고 또 활동해 나갈 수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법으로 보장된 자유하에서 소수자들은 투표를 통하여 관철하기 힘든 뜻을 시위와 투쟁의 형태로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위와 투쟁은 시민들의 권리이면서, 정치인을 대하는 게임에서 약속을 이끌어내는 전략적인 도구이다.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처벌을 감수하고라도 불법적이고 자극적인 시위를 이어나가는 안타까운 상황도 존재하지만, 그것을 ‘비문명화’된 것이라거나 전략적으로 합리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만큼, 부족함은 항상 있을 것이고, 시민들은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며, 소수자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특정 의견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다음을 약속하고 기다리라고 할 것인가는 정치인의 선택이고 그 책임은 정치인이 져야 한다. 시민들을 설득하고, 갈등을 봉합하여 합의에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그들의 책임이고, 또 그들의 능력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명화된 사회 속 합리적인 정치인의 능력 발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