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퍼빌러티 이론은 오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와 해결책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 헌법에는 이동권을 사회적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공공선택에 있어 이동권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권이 확보되지 못한 이유는 장애인 복지 문제 해결을 경제성장과 경제적 이득 차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돈만 있으면 다 해주지 돈이 없어 문제지”와 “취업도 어려운데 배워봐야 무슨 소용”으로 장애인 복지를 다루어 왔다. 그러나 복지와 자원의 분배 문제는 경제성장과 함께 정치, 법, 정책이 함께 발전해야 가능함에도 우리 사회는 이 부분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하였다.
현재 장애인들이 내세우는 구호를 보면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캐퍼빌러티가 추구하는 정신이다. 취업은 어려울지언정 교육을 받아야 자신이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가 생길 수 있는데, 이때 이동권은 그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기본권으로써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이들의 자유와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편 경제성장에 기반한 소득분배 중심 복지정책은 복지를 온정주의(또는 후견주의)로 흐르게 한다. 특히 장애인 복지는 더욱더 이러한 관점을 가지게 만드는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자존감은 누군가의 시혜와 온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를 통해 획득하는 민주주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온정주의로 가게 되면 엘리트 중심의 하향식 접근방법인 “때 되면 다 알아서 어련히 해 줄 테니 가만히 있으라”라는 식으로 변하여, 참여를 요구하는 각종 시위와 문제 제기를 마치 무대 뒤의 소음처럼 간주해 버린다. 이러한 관점은 현재 야당 대표가 촉발한,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발생한 다수에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짐과 동시에 시민불복종운동을 낳게 만든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미국 흑인의 민권운동인 시민불복종운동 배경에는 흑인 노예해방이 흑인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심과 배려 차원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정의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롤스는 시민불복종이 시민의 화합을 위협(지하철 이동권 투쟁)하는 것이라면, 이는 그 행위를 한 사람(장애인)의 책임이 아니라 이러한 행동이 정당하게끔 권위와 권력을 남용한 사람(정치인, 정부)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적 실천윤리학자로 유명한 피터 싱어는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이 반대하는 결정이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면 불법적 행위는 민주주의적 결정을 확보하기 위한 합법적 수단 사용을 확장한 것이라 말한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장애인의 이동권을 반대하거나, 또는 장애인은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은 확장성을 가지기 어렵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찾는 과정이며, 지금 우리의 불편은 그동안 다수가 무관심해 왔던 것을 성찰할 기회이기도 하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동일한 자유와 기회,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