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일해 왔는데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 “월급이 적어 생활이 어렵다.”
많은 일본인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것이 일하는 사람의 능력이나 노력의 문제라고 반드시 단언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일본과 세계의 데이터를 비교해 보면 일본이 통째로 임금이 낮은 나라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평균 임금(연간)은 2000년 시점에 3만8364달러(약 4640만 원)로 35개국 중 17위였다. 2020년은 3만8514달러로 금액이 약간 올랐지만, 순위는 22위로 내려앉았다. 과거 20년간의 상승률은 0.4%에 지나지 않았다. 이래서는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일본인이 많은 것도 당연할 것이다.
2020년 임금 랭킹 1위인 미국은 6만9391달러로 일본보다 44% 높다. OECD 35개 회원국 평균인 4만9165달러와 비교해도 일본은 22%나 임금이 낮다.
왜 일본인의 임금은 낮은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임금을 올리기 위해서는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인과 기업들은 부가가치 생산에 주된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대부분의 일본 기업이 중시하는 것은 아직도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 등이다.
애초에 일본식 회사는 매출을 늘리고 이익을 확대하는 것을 최대 목표에 두지 않고 있다고 흔히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국의 기업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이 20% 정도인데, 일본 평균 ROE는 8~9%라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대부분 일본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도 사원의 생활을 정년까지 보장해 주는 것이다. 즉 일본 사회는 매출과 이익을 늘리는 것보다도 안정적으로 회사를 유지하고 사원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그러니까 일본 회사는 위험부담이 있는 투자를 꺼린다. 투자 대신 회사에 돈을 모아 놓는다. 일류기업도 새로운 투자를 별로 하지 않고 내부유보금을 쌓아놓고 주주에게도 사원에게도 충분한 분배를 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있다.
이러한 안정 지향의 조직에서는 화합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조화를 문란하게 만드는 사원은 회사가 가장 싫어한다. 전례를 답습해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관계 부서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고 상사의 체면을 세워 무난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원이 평가받는다. 그래서 일의 중심에는 사전교섭과 상사의 생각대로 움직이려는 일본식 문화가 자리 잡는다.
이런 문화에 수십 년간 익숙해지면 사원들은 사고정지 상태가 된다. 무엇이 옳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관련 있는 여러 부서의 체면을 세울 수 있을까, 모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등이 출세의 갈림길이 된다.
그런 기술을 아무리 익혀봤자 세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본인의 임금을 올리기 위해서 그동안의 업무 방식을 개혁해 한 사람 한 사람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기업문화 자체를 변혁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 많은 일본인이 세계시장에서 평가받는 보편적인 기술을 몸에 익힐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이 충고하고 있다.
2020년 OECD 기준으로 일본의 평균 임금은 한국에 비해서도 연간 3445달러 낮았다. 월수입 기준으로 보면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약 34만 원 더 많이 받는다.
OECD 평균임금은 ‘구매력 평가’를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같은 품질, 같은 양의 제품이 미국에서 1달러, 일본에서 150엔일 경우 실제 환율이 아닌 1달러=150엔의 환율로 환산하는 계산방법이다. 구매력 평가에는 국가 간 물가수준의 차이가 고려되어 있어서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것에 더 가깝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일본 임금은 지난 20년간 0.4%밖에 늘지 않았지만, 한국은 43.5% 증가했다. 그 결과 2015년 시점에서 한국인의 평균임금이 일본을 능가했고 그 후에도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독일 등도 임금이 현저하게 상승하고 있다. ‘거의 임금상승 없음’ 상태인 나라는 일본과 이탈리아뿐이다.
일본이 임금이 오르지 않는 나라가 되어 버린 이유가 그밖에도 여러 가지 있으나 1991년의 버블 붕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크게 경기가 침체했을 때, 일본 기업은 노사가 협조해 고용유지를 우선시한 대신 임금을 억제해 온 것이 크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인건비를 억제하고 증가한 이익을 내부유보분으로 쌓아 놓았기 때문에 경제 위기 후의 자금조달 문제에 대처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경영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침체 당시 성공 체험이 임금을 계속 억제하는 동기가 된 것이다.
고용을 유지하면서 임금을 낮추지 못하는 것이 또 하나의 요인이다. 경기 침체기에도 임금을 인하하려고 하는 기업은 있었는데 이는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변경이라며 경영진이 재판에서 패소하는 판결이 잇따랐다.
그러므로 경영진은 임금을 인하하지 않는 대신 크게 올리지도 않는 방법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지적한 내용은 일본인의 임금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 중 일부이다. 일본은 한국의 미래 모습이라고 흔히 말한다. 과연 임금 수준도 그럴지는 의문이지만 일본을 보면서 한국이 생각할 수 있는 점들이 많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