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인류애적 혹은 시장적 관점에서

입력 2022-03-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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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부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되었음에도 종전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군사 전략 전문가는 아니지만, 양국 모두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혹은 조금만 더 버티면 상대편의 기세가 꺾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방의 승리를 지연시키면서 전쟁의 장기화로 연결될 개연성을 높일 수 있다.

현대 전쟁은 그 누구에게도 긍정적일 수 없다. 에릭 홉스봄은 20세기 이후의 전쟁을 ‘총력전’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단순히 군대끼리 충돌하는 과거와 달리 각 국가가 갖고 있는 총체적 산출물을 모두 투하해서 벌이는 전쟁이기에 총력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인데, 군사적인 역량뿐 아니라 경제력 역시 전쟁에 투영되어 나타나게 된다. 경제적 산출물이 전쟁에 투하되는 만큼 전쟁이 장기화했을 때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의 경제적 피해 역시 커지게 되는데,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우크라이나 국민이 될 것이다. 불의의 공습 등으로 가족과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온다.

러시아 국민 역시 그 정도의 차이일 뿐 받는 충격은 상당하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바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전면 금융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스위프트 규제뿐 아니라 러시아의 외환보유고 역시 동결하게 되는데, 이는 러시아로의 자금 흐름을 막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돈을 받을 수 없으면 물건을 팔 수가 없다. 돈을 받을 계좌를 정지시켜 버리는데, 그리고 해외 은행에 예치한 자금들을 모두 동결시키는데 추가적인 거래나 결제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금융의 중단은 경제 활동의 중단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제 활동의 중단은 러시아 경제 성장에 궤멸적인 타격을 주면서 러시아로부터의 외국인 투자자 자본 유출을 촉발하게 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러시아 자산을 팔고 그렇게 받은 루블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사서 해외로 이탈하게 되는데, 러시아는 전쟁과 동시에 외국인들의 금융 자산 매매를 제한하고 해외로의 자본 유출입을 막는 이른바 자본 통제를 발표한다. 아울러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인상하면서 더 높은 금리를 대가로 이탈을 제어하려는 정책 역시 도입한다.

그러나 해외로부터의 자본 유출입이 막히면서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고립되고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해외에서 수입되는 물건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겪게 된다.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데 20%로 높아진 고금리의 폐해 역시 러시아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결국 지금 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는 고스란히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의 국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으로 피해가 국한되지는 않는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주요 원자재 수출국이다. 물가 상승 압력이 높은 지금의 상황에서 이 두 국가의 전쟁으로 인해 원자재의 원활한 공급이 막히게 된다면 인플레이션 부담은 전 세계에 보다 크게 작용하게 된다.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국제 유가와 고공비행을 하는 각종 원자재 가격을 보면, 지금의 원자재 가격 상승이 단순히 물가 상승을 넘어 글로벌 소비 둔화 및 기업들의 원가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렇게 글로벌 경제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면 어김없이 나서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같은 글로벌 중앙은행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성장뿐 아니라 물가 안정에도 힘써야 하는데, 성장의 불확실성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고공비행한다면 과거와 같이 금리 인하 등의 경기 부양에 나서기 쉽지 않다. 연준의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성장 부담에도 불구, 2018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0.2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긴축으로의 전환을 알린 바 있다. 과거에는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인 경기 부양을 해야 하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압력 앞에서 반대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 러시아에 대한 규제를 무력화하는 우회적 통로를 제어하기 위한 세컨더리 보이콧 등의 규제가 추가될 경우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을 키우는 쪽으로 번져나갈 개연성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18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는 미·중 무역 분쟁의 충격으로 신음했던 바 있는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것이 결코 반가운 소식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전쟁을 통해서 전 세계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정말 만만치 않다. 인류사의 비극이 될 수 있기에, 그리고 코로나 여파에서 여전히 신음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에 추가적인 충격이 될 수 있기에 지금의 전쟁이 빠르게 종식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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