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인 9일 밖에 내놓은 손이 10분 만에 꽁꽁 얼 정도로 아침 날씨가 차가웠다.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주민센터에 위치한 신촌 제3투표소는 한산했다. 2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만이 투표를 위해 체온을 재고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사람이 한두 명씩 모여 줄을 서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찾아간 서울 창서 초등학교에 위치한 신촌 제4, 5투표소 역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될 정도로 인파가 몰리지는 않았다.
젊은 층이 많이 사는 곳인 만큼 20~30대가 눈에 많이 띄었다. 두 곳의 투표소에서 만난 이들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게 된 이번 대선에 입을 모아 아쉬움을 표했다.
대학생인 신모(22, 여) 씨는 "첫 대선 투표라 많이 설렌다"며 "선거운동 기간에 지지 후보가 바뀌었고 차악이라 생각되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 씨는 "추적단 불꽃이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마음이 바뀌었다"며 "여성정책이 다른 후보보다 세세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추적단 불꽃은 'n번방 사건'을 처음 보도한 이들이다. 이들 중 한 명인 박지현 활동가가 이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디지털 성범죄근절 특별위원장으로 활동해 이목을 끌었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일하는 중이라는 한모(23, 여) 씨는 "차선책을 선택했다"며 "누군가를 확실하게 지지하기보다 궁지에 몰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인 고모(34, 남) 씨는 "처음에는 차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올해 초부터 지지하게 된 윤석열 후보를 뽑았다"며 "당 대표를 믿고 뽑은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차악보다 소신껏 최선을 선택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직장인 양모(27, 여) 씨는 "소신투표를 했다"며 "결점이 없는 후보는 없겠지만 젠더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특정 유권자를 지지하는 후보는 별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표심을 가를 열쇠로 지목됐던 페미니즘 이슈는 투표에 영향을 줬다는 측과 없었다는 측으로 나뉘었다.
한 씨는 "페미니즘 이슈가 투표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며 "성별 갈등은 없다고 생각하고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무직인 양모(29, 남) 씨 역시 "표를 줄 때 페미니즘 이슈를 고민하지는 않았다"며 "가시적인 영역의 성차별은 없지만 택시를 탈 때 조심하게 되는 등 신체적인 조건에서 기인해 여성이 받는 차별이 있다고는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 씨는 "페미니즘이 투표에 많은 영향을 줬다"면서 "남자라고 차별이 없는 게 아닌데 지금은 여성 차별을 해결하는 점에만 편중된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선거운동 막판에 1번남·2번남 등의 논란이 생긴 것은 정치인들이 프레이밍을 한 것일 뿐"이라며 "남성들이 두 갈래로 나뉠 만큼 1·2번 후보의 공약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내 주변 '알파남'은 오히려 여성을 무시하고 정치에 관심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성차별이 없다는 후보들의 말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는 의견도 있었다. 양 씨(27, 여)는 "이번 대선에서 여성 유권자는 지워졌다"며 "20대 남성만을 위해 유세하는 후보가 계실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후보자들은 기득권 남성"이라며 "성차별이 없다는 이들의 말을 듣고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했고 현실을 인지하도록 도와줘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떤 후보가 당선되던 약속한 것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 씨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공약만 잘 지키면 좋겠다"며 "채용 과정이 말로는 블라인드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비리 등의 문제를 철저히 규명하고 규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양(29, 남) 씨는 "서로 헐뜯기보다는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며 "청년 일자리, 국민연금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