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디플레 악순환…주가 상승 이유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잃어버린 30년’ 영향으로 일본 경제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특히 경제 전반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작용했다. 디플레가 발생하면 돈의 값이 상승하고 물건값이 떨어지는데, 이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부채를 짊어진 이들이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사업을 하거나 혹은 집을 구입한 이들은 자산가격 하락으로 큰 손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이자 부담이 더 높아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은행의 대출금리가 2%까지 떨어졌다 해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라면 이 사람의 실질적인 금리 부담은 3%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가 디플레로 연결되고, 다시 디플레가 자산시장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던 것이다.
돈 풀어 지속적으로 인플레 유도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할까? 여러 정책이 검토될 수 있으나, 가장 핵심적인 수단은 통화정책이다. 왜냐하면 강력한 통화공급 확대정책이 디플레이션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부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지속된 디플레로 일본 사람들은 ‘가격인상’에 대한 저항감이 강하다. 그런데, 정부가 끝없이 돈을 풀어 지속적으로 인플레를 유도한다면 점점 생각이 바뀌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물론 통화공급 확대정책의 혜택이 가계보다는 기업에 더 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총요소생산성 주도 노동생산성 향상
아래의 <그림>은 일본의 한 민간 연구소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동생산성이 1990년대를 바닥으로 서서히 개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노동생산성이란, 근로자 한 명이 동일한 시간 안에 생산한 결과물을 뜻한다. 예를 들어 1만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연 100만 대를 생산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어 추가적인 근로자 고용 없이 120만 대를 생산하게 되었다면 이 회사의 경쟁력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급격한 원가상승 없이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노동생산성 향상이 총요소생산성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요소생산성이란 노동의 질적 개선 혹은 자본의 추가적인 투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산성 향상분을 뜻한다. 세계 주요 기업들은 총요소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구개발 비용을 투입하고 새로운 공정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드디어 일본도 이 대열에 가세한 셈이다. 따라서 일본 주식시장의 회복은 기업의 경쟁력 개선 및 이익 증가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엔화 약세, 수출기업 경쟁력 개선
물론 한 가지 포인트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엔화의 약세였다. 인플레를 유도할 목적으로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돈을 풂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들은 엔화의 가치가 앞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하게 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출현한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 상승은 곧 일본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개선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외국인 6000억엔 이상 순매수
이와 같은 일본 기업의 경쟁력 개선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였다. 2021년 한 해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수 6021억 엔(도쿄증시 1부 기준, 한화 6조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엔화 약세로 인한 환평가 손실보다 일본 주가 상승의 잠재력이 더 높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결과 1990년 외국인 투자자의 일본 주식 보유 비중은 5%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20년에는 30% 선을 넘어서고 있다.
물론 주가 상승으로 외국인만 이득을 본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부터 일본 경제가 망가졌던 이유가 자산가격 하락 때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폭락으로 일본의 가계와 기업이 입은 손실이 3년치 국내총생산에 이를 정도로 컸고, 빚을 져 주식이나 부동산을 매입했던 이들은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따라서 주식시장의 회복은 일본 경제에 여러 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주가 상승, 가계·기업 현금흐름 개선
무엇보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가계와 기업이 주식을 매도할 기회가 생긴다. 주식 가격이 올라 손실을 만회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오랫동안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던 주식이 반등한 것은 모두 가계와 기업의 현금 흐름을 개선시킬 것이다. 특히 일본은 기업과 은행 간에 주식 ‘상호보유’ 관행이 있기에, 굳이 주식을 매도하지 않더라도 보유주식의 평가손이 축소되는 것만으로도 재무상태를 개선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일본 주식시장은 인구감소 충격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었는지 모르지만, 부동산은 상황이 다르지 않느냐고 말이다. 물론 맞는 이야기다. 다음 기고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자세히 다뤄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