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국채 거래도 제한
푸틴 다음 행보 고려해 제재 저울질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VEB와 방산지원특수은행인 PSB 2곳, 그리고 이들의 자회사 42곳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푸틴 대통령 측근의 아들 3명도 제재 목록에 포함됐다. 서방 금융시장에서의 러시아 신규 국채 거래도 제한했다. 러시아 정부가 서방에서 새로 자금을 조달할 길을 차단해 돈줄을 조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친러파 장악 지역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군’ 파견을 명령한 후 즉각적인 제재 조치에 나섰지만 수준은 약하다는 평가다.
두 은행의 경우 국책 기관으로 소매금융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이번 제재 조치에 대해 ‘상징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돈바스 친러파 장악 지역을 넘어 서진할 경우 추가 제재를 내놓을 예정이다. 더 가혹한 조치를 경고, 러시아의 추가 공격 억제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제재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조치와 닮았다. 당시 부통령이던 바이든은 이번에도 러시아를 상대로 제재를 저울질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국은 2014년 제재를 훨씬 뛰어 넘는 수준의 제재를 시작할 것”이라며 “추가 침공시 제재를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드워드 피쉬먼 미 국무부 제재정책 담당자는 “미국이 러시아 국영 금융기관을 완전히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다른 은행들을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차단할 수 있다는 경고”라며 “푸틴이 벼랑 끝에서 물러날 기회를 주는 것이고 전면전을 택한다면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이 2014년 제재를 적용한 이후 러시아도 ‘적응력’을 키워왔다. 푸틴 대통령은 1조5000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 경제를 더 배타적으로 만들어 강력한 제재로부터 견딜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18일 취재진에 “‘불법적인’ 서방의 제재를 겪으면서 러시아 경제가 더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에 힘입어 추가 제재를 견딜 수 있도록 예산과 재정을 조정해왔다. 2014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채도 적고 외국 자본 의존도 낮아졌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만 6310억 달러로 세계 네 번째 규모다.
전문가들은 특히 푸틴과 측근들이 입을 타격이 약할 것으로 내다봤다. 푸틴 주변의 강경론자들이 이미 재무부 명단에 들어 있는 데다가 측근들은 물론 가족들도 더이상 미국 및 유럽과 관계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이들이 중요 역할을 맡고 있는 국영 및 민영 기업의 경우, 외부세계와 고립됐을 때 오히려 이득을 보는 구조라는 점도 제재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결국 러시아가 침공을 확대하면 더 가혹한 제재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푸틴과 측근들 이외 일반 시민들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제재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최고 은행과의 거래를 차단할 경우 러시아가 재정적 공황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주식 시장이 붕괴하고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수 있다. 중산층과 저소득층 가계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방문 학자이자 러시아 정책 전문가인 마리아 스네고바야는 “미국이 가장 가혹한 처벌을 가한다면 세계 시장에 예상치 못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