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립한글박물관 상설관도 새롭게 재개장했는데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계획’ 전시는 희미했던 ‘국뽕’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밝은 로비와 대비되는 전시장 입구를 지나 마치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탈 작품 같은 해례본 33장의 오브제를 시작으로 마지막 콘텐츠까지 관람의 몰입과 이완을 조절하며 밀도 높은 전시를 구현했다. 전시 내용과 구성, 공간의 감도, 마감의 디테일, 미디어 등 전체 경험이 만족스러웠다. 얼마나 좋은 콘텐츠인지가 먼저겠지만 어떻게 잘 보여주느냐에 따라 경험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온 감각으로 체험했다.
공간이나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다 보니 관람객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하는데, 이전의 박물관이 다분히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리뉴얼 이후 확실히 ‘관람객 중심’이 되었다. 공공공간의 특성상 모두의 만족은 쉽지 않은데, 최근 여러 곳에서 관람객 저마다 흥미로운 경험을 하고 있음을 공통적으로 느꼈다. 미공개 개인 소장품들도 전시되어 콘텐츠가 풍성해졌고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을 주제에 따른 공간의 전환, 몰입하게 하는 스토리텔링, 실물과 미디어의 적절한 활용으로 관람 여정을 도왔다.
분위기뿐 아니라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과 집기, 설명글의 타이포그라피 등 전체적인 완성도가 훌륭했다. 마치 없는 것처럼 깨끗한 유리가 인상적이었던 경주에서 스태프들에게 얼마나 자주 닦는지 물었더니 ‘관람 동선에 방해되지 않게 수시로’라고 이야기한다. 명품 매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섬세한 운영관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곳곳에 놓인 전통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가구들도 눈에 띄었는데 그 또한 작품 같았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빛이 가득한 큰 창 아래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과 스툴에 옹기종기 모여 이리저리 가구를 만져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좋았다.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서 뛰놀거나 문화유산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타국에 대한 부러움은 옅어지고 우리 것을 만나는 경험이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있음에 감사했다.
코로나19 이후 여러 뮤지엄과 갤러리에서도 소장 유물전이 열렸는데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거나 개인 소장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까지 온·오프라인 다양한 채널로 관람객들과 소통했다. 처음에는 방역이나 해외 작품 유입 문제로 소장전 일색이 되었나 싶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진짜 우리 가치를 보기 시작한 것 같아 좋다. 우리 민족이 살아온 평범하고 또 화려한 매력적인 삶의 흔적들을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라서 더 잘 느낄 수 있으며, 이제서야 제대로 향유하게 된 것이 아닌가. 불에 타고 빼앗기고 남은 것이 별로 없다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애정을 담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지닌 콘텐츠는 무궁무진하고 그것을 좋은 경험으로 구현하는 역량도 매우 높아졌다. SNS에서도 해외 어디 뮤지엄이 아닌 ‘반가사유상’으로도 충분히 ‘인싸’임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느낌과 생각을 자기 언어로 표현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문해력도 글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해석이 가능한 실질적 문해가 중요한데, 우리는 역사와 문화 예술을 대충 혹은 너무 어렵게 형식적으로 배워오지 않았나. 좋은 것을 경험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며 관심사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대화로 이끄는 힘을 비롯한 인문학적 소양은 어려서부터 일상에서 체화해야 가질 수 있는 힘이다. 디지털 문해력 교육에 대해 여러 형태로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 ‘디지털’을 떠나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에서 실질적 문해력을 기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방법으로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