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결혼관이 바뀌고 있다. 서울에 사는 남녀 가운데 절반 이상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 3∼4명 중 1명꼴로는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3일 서울시가 발표한 '2021년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여성 58.1%, 남성 60.8%로 남녀 모두 절반을 넘었다. 10명중 3명(여성 28.1%, 남성 31.6%)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비혼 출산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 26.2%는 비혼 출산을 고려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결혼은 하기 싫지만 아이는 낳고 싶어서(45.4%)'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비혼은 물론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하거나 출산하는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9월 동거하거나 동거 경험이 있는 30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비혼 동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거 사유에 대해 전 연령층이 '별다른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38.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아직 결혼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27.4%)', '집이 마련되지 않아서(25.6%)', '데이트 비용이나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서(24.4%)', '곧 결혼할 것이라서(23.3%)'가 그 뒤를 이었다.
동거의 긍정적인 면을 묻는 질문에는 '상대방과 함께 함으로써 정서적 유대감과 안정감을 느낀다(88.4%)'가 가장 많았다. 이어 '상대방의 생활 습관을 파악해 결혼 결정에 도움(84.9%)', '생활비 공동 부담으로 경제적 부담이 적음(82.8%)',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음(75.4%)', '명절 및 가족행사 등 부담이 덜함(72.0%)' 순으로 집계됐다.
동거로 인한 불편함으로는 응답자의 절반이 '주택청약, 주거비 대출 등 주거지원제도 이용의 어려움(50.5%)'을 꼽았다. '부정적 시선(50.5%)',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함(49.2%)' 등도 많았다.
현재 동거 중이며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경험한 비율은 '출생신고(52.3%)'가 절반을 차지했다. '의료기관에서 보호자 필요 시(47.3%)', '보육시설이나 학교에서 가족관계 증명 시(42.9%)'에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혼인 신고 없이 사는 '비혼 동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정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가족 가치관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혈연 중심에서 서로를 돌보며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주거 지원 등은 법률 혼인 기반으로 한계가 있다. 병원 등에서 보호자 역할을 못해 곤란을 겪는 일도 다반사"라고 꼬집었다. 이어 "중앙정부에서도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울시에서 먼저 조례를 제정하거나 서울시 산하 병원에서 동거인을 인정하는 등 선도적인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