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부터 추가경정예산안(추경) 국회 심의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미 여야 대통령 후보를 중심으로 증액 논의가 한창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추경이 편성된 사례는 드물지만, 몇 안 되는 사례에서도 대통령 후보들이 나서서 증액을 요구했던 적은 없다.
◇1992년, 2002년, 2022년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확정된 뒤 추경이 편성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1992년 노태우 정부는 중소기업 자금난 경감을 목적으로 전년도 세계잉여금 잔액을 활용한 3017억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고, 2002년 김대중 정부는 태풍 ‘루사’ 피해 복구를 위해 한국통신 주식 매각 초과수입 등을 활용한 4조1431억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이들 추경의 공통점은 대통령 후보가 확정된 뒤 편성됐고, 국회 논의·심의에서 원안(정부안)이 그대로 확정됐단 점이다.
2002년 추경 때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정부에 먼저 추경 편성을 요구했으나, 구체적인 규모·내용에 개입하진 않았다.
반면, 올해 추경에 대해선 여야 대통령 후보가 앞다퉈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요구액은 35조 원 내외다. 정부안(14조 원)의 2배가 넘는다. 양당 원내지도부도 각 당 후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부에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편성한 추경에 현역 국회의원도 아닌 대통령 후보들이 개입하는 초유의 상황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예산안 편성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대통령도, 입법부 구성원도 아닌 대통령 후보들이 추경 규모를 정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정책의 연속성과 책임성, 정부 존재 이유의 측면에서 이번 추경은 정부안대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예산안 편성의 전문성 차원에서도 선거대책위원회의가 개입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정부가 대통령 후보들의 요구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여야 합의해도 기재부 장관 동의 필요
여야가 합의한다고 해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동의하지 않으면 증액은 불가하다. 기재부는 적자국채 추가 발행에 따른 채권시장 혼란과 국고채 금리 상승 등 우려로 증액에 부정적이다. 정부안 14조 원은 지난해 초과세수로 국채를 조기 상환한다는 전제하에 추가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편성 가능한 최대치다. 홍 부총리도 지난달 21일 브리핑에서 “14조 원 상당의 이번 추경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며 국회에 정부안 존중을 요청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회 시정연설을 앞둔 지난달 25일 기자들과 만나 추경 증액 논의에 대해 “돈을 어디서 가져온다고 하냐”고 반문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생각보다 심하다. 금리 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선 후보 공약(추경 증액)과 우리가 쓸 수 있는 현실적 방안(국채 미발행) 사이에서 대안을 마련해준다면 우리가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