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투쟁에 빚지며 살아간다. 그 투쟁의 결실이 ‘약자를 위한 것’이라면 마음은 더 무겁다. 외롭게 싸우던 이는 세상을 떠났거나 유족들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군에는 기억할만한 두 개의 변화가 있었다. 그 뒤를 쫓다 보면 젊은 두 군인의 죽음과도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 국방부는 지난달 ‘성전환자 군 복무’ 연구에 돌입했다. 이들의 군 복무 여부도 구체화 될 전망이다. 고 변희수 하사는 승리도 거뒀다. 지난해 10월, 재판부는 변 하사가 생전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정책 연구 역시 ‘성소수자의 군복무에 관한 국가 차원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재판부 지적에 따른 후속 조치다. 지난해 3월, 변하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또 다른’ 변희수들이 살아갈 수 있는 숨구멍을 틔워줬다.
두 번째, 7년 만에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신설됐다. 2014년 ‘윤일병 사건’부터 지난해 고 이예람 중사까지 군 인권침해 피해자들 희생의 산물이다. 윤일병 모친과 이중사 부친은 추운 겨울밤, 국회도 찾았다. 지난달 2일, 이 중사 부친은 국회운영위에 참석해 “우리 윤일병은 갔고 이중사도 갔지만, 앞으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을 법안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회의록을 작성하던 속기사가 그의 이름을 물었다. 이날 유족들의 발언은 예정에 없었던 터라 아무도 그의 이름을 몰랐다. 그러자 그는 “고(故)는 안 붙이고 싶은데,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입니다. 우리 예람이는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렸다. 투사도 아이 이름만 부를 때면 그렇게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2022년, 우리는 변하사도 이중사도 그리고 윤일병도 없는 오늘을 살아간다. 여전히 유족들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10일 이중사 부모는 자식의 죽음을 복기한 탄원서를 챙겨 공판에 참석했다. 그래서 이들의 부재가 더 아프게 다가오는 새해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탄생한 정책은 제2, 3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이들의 싸움이 공허하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이유다. 연대의 2022년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