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은 어느 한 나라가 자국 내 탄소의 ‘순배출량 제로’를 실현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지만, 기후중립은 어느 한 나라만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없다. 즉, 탄소중립은 특정 국가의 책임을, 기후중립은 지구촌 모든 나라의 책임을 강조한다. 실제 기후중립을 목표로 출범한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에는 유럽연합 회원국들뿐 아니라, 비회원국도 3개국(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노르웨이)이 참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지금도 다른 비회원국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는 일부 서유럽 선진국들의 탄소중립만으로 기후변화를 멈출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 기반한다. 아울러 그러한 현실 인식의 연장선 상에서 유럽연합은 다른 나라의 환경규제 강화를 유도하기 위하여 탄소국경조정 제도를 도입하였고, 또한 중국 등 다른 독자적인 배출권거래제 출범도 지원하고 있다.
이제 시야를 돌려 우리의 현실을 보자.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우리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6.3% 감축한다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에 제시했고, 올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해당 감축목표를 40%로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중국, 인도, 그리고 여러 동아시아 국가들은 2070년 혹은 208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안타깝게도 주변국들의 동참 없는 우리만의 탄소중립으로는 기후변화를 멈출 수 없다. 오히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생산기지 이전만 촉진한다. 우리 기업들에만 탄소중립을 강요하기보다는, 동아시아 지역의 다른 국가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안은 동아시아 국가 간 기후중립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조체제를 점차 구축해 가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동아시아 배출권거래제나 아시아·태평양 배출권거래제를 추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처럼 특정 시점에 단일 배출권 거래 시장을 출범시키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과도기적 단계로 준비되는 나라들부터 독자적인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도록 하되 개별 탄소배출권 시장들을 연결(linkage)하는 형태를 거쳐, 최종적으로 탄소배출권 발행량 결정 권한을 일원화하는 순차적인 접근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30년 후 우리만의 탄소중립을 달성한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자식 세대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존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기후변화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역내 환경규제를 일원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당 지역에 환경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외교관을 증파하여 정부 대 정부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한국개발연구원이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환경연구원 등 환경과 통상 정책을 함께 연구하는 연구기관들을 중심으로 현지 학자들과의 민간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상호 신뢰를 쌓고 환경규제를 일원화하는 것이야말로 기후중립의 전제조건이다.
탄소중립과 기후중립, 언뜻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의 크기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우리가 기후중립을 선도해 나아가야 한다. 혼자만의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모범생보다는 함께 기후중립을 추구하는 반장의 위치에 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