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이체된 가상자산을 마음대로 처분했더라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18년 6월 알 수 없는 경위로 자신의 가상지갑에 이체된 피해자의 비트코인을 자신의 다른 계정으로 이체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가상화폐 거래소 전자지갑에 이체된 피해자의 비트코인을 반환하기 위해 그대로 보관하는 등의 사무를 처리할 임무를 부담하는 신의칙상의 신임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2심도 “횡령죄와 배임죄는 신임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같은 죄질의 재산범죄로서 법률관계 없이 돈을 이체받은 계좌명의인은 송금의뢰인을 위해 송금받거나 이체된 돈을 보관하는 지위가 인정되는데 가상자산을 원인 없이 이체받은 경우를 이와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가상자산 권리자의 착오나 시스템 오류 등으로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다른 사람의 전자지갑에 가상자산이 이체된 경우 이체받은 사람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A 씨가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게 될 수는 있으나 이는 당사자 사이의 민사상 채무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가상자산은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고 그 거래에 위험이 수반되므로 형법을 적용하면서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형사처벌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착오송금 시 횡령죄 성립을 긍정한 대법원 판례를 유추해 신의칙을 근거로 피고인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알 수 없는 경위로 이체받은 비트코인을 다른 계정으로 이체한 경우 배임죄 성립을 부정한 첫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