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스트 아웃’...인플레가 바꾸는 정치 지형

입력 2021-12-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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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가치 폭락·물가 폭등에 민심 이반
브라질 대통령, 내년 대선 경쟁자 룰라에 지지율 크게 뒤져
터키 리라화 올 들어 45% 폭락…에르도안 경제 도박 결과
헝가리도 장기 집권 오르반 총리 정치 생명 벼랑 끝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플라날토 대통령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브라질리아/로이터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플라날토 대통령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브라질리아/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 터키, 헝가리 등 일부 신흥국들이 초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의 정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 현 집권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세계 경제를 지배했던 저성장과 미지근한 인플레이션 수혜를 누려왔다. 그러나 코로나발(發) 물가 급등으로 정치 지형이 흔들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4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지지율은 2022년 대선 경쟁자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에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에 분노한 민심이 물가 급등으로 폭발했다는 평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브라질의 물가상승률은 10.7%로 주요 20개국(G20) 중 터키와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은 이미 코로나19로 휘청이던 서민 경제를 강타했다. 윌리엄 잭슨 캐피털이코노믹스 신흥시장 이코노미스트는 “브라질 물가 상승 폭이 다른 신흥국에 비해 가파르다”며 “소비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추이. 11월 10.74%. 출처 트레이딩이코노믹스
▲브라질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추이. 11월 10.74%. 출처 트레이딩이코노믹스
브라질 물가 급등의 배경으로 100년 만의 극심한 가뭄, 헤알화 가치 폭락 등이 꼽힌다. 헤알화는 최근 6개월간 달러 대비 10% 폭락했다. 높은 물가에 중남미 최대 경제국 브라질은 2분기 마이너스(-) 0.4%, 3분기 -0.1% 성장률을 각각 기록했다.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브라질 경제는 ‘기술적 침체’에 빠졌다.

문제는 이 같은 경제침체, 높은 물가에도 보우소나루 정부가 ‘헛발질’을 한다는 데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계속 현금을 뿌려댄다. 재정 지출 확대는 가뜩이나 폭락한 통화 가치를 더 끌어내리고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킨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1월 24일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앙카라/AP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1월 24일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앙카라/AP연합뉴스
터키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리라화 가치는 올해 들어 45% 폭락했고 11월 물가상승률은 20%를 돌파했다. 이날 터키 리라화 가치는 장중 사상 최저치인 1달러당 14.75리라까지 급락했다.

터키의 리라화 가치 폭락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제 도박에 나선 결과다. 그는 물가가 치솟는 데도 중앙은행을 압박해 기준금리를 끌어내렸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 9월 이후 석 달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해 19%이던 금리를 15%로 낮췄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주요국이 긴축으로 태세를 전환했지만, 터키만 정반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를 ‘적(適)’으로 규정하면서 “금리 인하를 통해 경제 독립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비상식적인 경제정책을 고집하면서 민생 경제는 파탄에 이르고 있다. 가뜩이나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리라 약세는 수입 물가 급등을 초래해 가계 부담을 키우고 있다.

▲터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추이. 11월 21.31%. 출처 트레이딩이코노믹스
▲터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추이. 11월 21.31%. 출처 트레이딩이코노믹스
헝가리도 물가가 2007년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10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인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정치 생명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팬데믹 이전 수십 년 간 지속된 세계 저성장과 저물가의 혜택을 누렸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금융당국이 저성장 국면에서 저금리를 유지,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찾아 신흥국으로 발길을 돌린 영향이다. 해외 자금 유입은 경제를 떠받쳤고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의 성과를 포장했다. 2009년 급격한 경기 침체를 겪었던 터키 경제는 외국인 차입금 급증으로 빠르게 반등했다. 2018년 보우소나루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압박과 맞물려 미국 투자자들이 신흥국 채권을 더 많이 사들인 덕을 봤다.

대런 애쓰모글루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경제학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환경은 권위주의자들에게 신의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환경이 떠받쳤던 포퓰리스트들의 인기는 초인플레이션 공포 속 ‘밑천’이 드러나면서 빠르게 식고 있다. 올해 세계 경제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을 딛고 회복을 시작하면서 글로벌 물가는 가파르게 뛰었다. 막대한 유동성에 수요 급증, 공급망 혼란, 에너지 대란, 인력난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다. 각국 정부와 금융당국은 정책 방향 선회에 나섰다. 하지만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상황을 악화시켰고 민심은 돌아섰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견고했던 정치 지형에 균열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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