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금리인하 고수에 시장 요동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상식을 거스르는 경제 정책 운용에 경제가 또 다른 위기국면에 진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높은 물가에도 기준금리 인하 방침을 고수하면서 리라화 가치가 곤두박질쳤다고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이날 달러·리라 환율은 장중 한때 18% 폭등한 13.45리라까지 치솟았다. 지난주 심리적 저항선으로 간주되는 11리라를 찍은 데 이어 일주일 만에 환율이 사상 최고치(리라화 가치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리라 통화 가치는 일주일 새 19%, 한 달 새 23% 폭락하며 곤두박질치고 있다.
리라화 가치 폭락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옹호하면서 촉발됐다. 경제 이론상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 10월 터키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19.89% 폭등해 20%에 육박했다.
하지만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주 기준금리를 16%에서 15%로 1%포인트 인하했다. 물가 급등에도 9월 19%에서 18%, 10월 18%에서 16%로 각각 내린 데 이어 석 달 연속 기준금리 인하에 나선 것이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주요국이 긴축으로 태세를 전환했지만, 터키만 정반대로 움직이자 비판이 커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각 회의 후 연설에서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를 옹호했다. 그는 고금리를 ‘적(適)’으로 규정하면서 “금리 인하를 통해 경제 독립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 통화량이 증가해 물가가 상승하고, 외화 대비 자국 통화의 가치가 하락한다. 반대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시중 통화량이 감소해 물가가 하락하고, 외화 대비 자국 통화 가치는 상승한다. 이러한 상식과 달리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리라화 가치는 서구 사회와의 갈등, 경상수지 적자, 외환보유고 감소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2018년 이후 줄곧 하락해 왔다. 그러나 금리를 올려 물가를 낮추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게 가장 치명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고환율로 수출을 장려하는 경제정책을 고집하는 동안 민생 경제는 파탄에 이르고 있다. 가뜩이나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리라 약세는 수입 물가 급등을 초래해 가계 부담을 키우게 된다.
세미 투먼 전 터키 중앙은행 부행장은 에르도안이 리라화 가치를 역사상 최저치로 끌어내리고 있는 데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는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비합리적인 실험을 멈춰야 한다”며 “리라화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으로 복귀해야 하고 터키인들의 삶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