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직원들 고객폭언 시달려도, 은행 "정보보호" 증거제출 거절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효과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사가 폭언한 고객과 법으로 해결하려 해도 만년 ‘갑(甲)’ 은행에 통화 녹취록을 달라고 할 수 없어서다. 상담사를 위한 법이었지만, 실상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돼 고객의 폭언 등으로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경우 특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행령에 따르면 이 조치엔 관할 수사기관 또는 법원에 증거물, 증거 서류를 제출하는 데 필요한 지원 등이 해당된다. 이를 어기면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나,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을(乙)인 하청업체 콜센터가 갑(甲)인 원청업체 은행에 녹취록을 요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담사 A씨는 고객의 막말로 법적인 조처를 취할지 고민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그가 콜센터에 해당 통화 녹취록을 요청했지만 콜센터가 이를 거절하면서다. 콜센터는 원청인 은행이 주지 않아 A씨에게도 줄 수 없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은행은 고객 정보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고객의 목소리와 이름은 물론 이 고객이 희망하는 대출 금액 등이 통화 내용에 담겨있어 이런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통화 녹취록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콜은행이 녹취록 주기를 거절할 경우 콜센터가 상담사를 위해서 은행에 재차 녹취록을 달라고 요청하기는 쉽지 않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권력 차이 때문이다. 하청업체인 콜센터는 통상 2년 후의 재계약을 위해서 은행의 비위를 거스르기 쉽지 않다. 하청업체가 은행의 강경한 태도를 받아들이면 그 아래 있는 상담사 역시 하청업체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관련해 지난 9월 사무금융노조 우분투센터와 직장갑질119가 콜센터 상담사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응답자의 67.1%가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이후에도 고객 갑질이 줄지 않았다고 답했다. 주로 고객은 ‘빨리 처리해달라고 계속 독촉’(76.3%)하거나 ‘대기 시간, 회사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을 상담사에게 항의’(76%)했다. 또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가 난 말투’(74.5%)로 말하기도 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상담원들이 먼저 고객의 전화를 끊을 수 있게 됐지만, 몇몇 콜센터는 전화를 끊으려면 콜센터 관리자의 허락을 받도록 하고 있다. 상담사 B씨는 “고객이 비하 발언을 하면, 그걸 들으며 회사 메신저로 관리자에게 알린다”며 “관리자가 끊으라고 하기 전까지는 폭언을 계속 듣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사 C씨는 “고객의 말 중 ‘네가 그래서 거기 앉아있는 거다’라는 말이 가장 가슴 아팠다”며 “직업에 대한 사명을 갖고 일하는데, 고객이 이를 무시할 때 슬프다”라고 토로했다.
동법엔 사업자가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도록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상담사끼리 경쟁을 극대화해 사업자들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 바로 인센티브 제도를 악용하면서다. 대부분의 콜센터는 상담사들이 처리한 콜 수대로 줄을 세워 인센티브를 차등지급하고 있다.
당장의 1콜을 받으면 다음 달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의 액수가 달라져 콜센터 상담사들은 화장실을 참아가며 전화를 받는다. 이 탓에 방광염ㅇ느 상담사의 대표적인 직업병이다. 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쉴새 없이 말해 후두염은 일상이다. 목이 말라도 물은 참아야 했다. 물을 먹으면 화장실을 자주 가서다. B씨는 “물을 먹고 싶으면 조절해서 먹는다”며 “화장실을 가는 5분 동안 콜 수가 (다른 직원과) 확 벌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