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대금 줄며 동학개미 움직임 둔화…증시 버블 붕괴 우려도
전문가들 지나친 우려 경계…“10월 CPI 고점일 수도…원자재 가격ㆍBDI 하락”
헝가리의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주가지수와 실물경제를 산책 나온 주인과 개에 비유했다. 산책하는 동안 줄에 묶인 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결국은 주인의 주변을 맴돌 뿐이고 길게 보면 주인이 가는 길을 따라간다. 주가지수는 개이고 실물경제는 주인이다.
주인을 앞서가던 개(주가지수)가 다시 주인(실물경제)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미국과 한국의 통화 정상화로 시중에 풀렸던 유동성 자금이 줄어들면서 국내 증시 시장이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는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미국의 금리 인상 우려에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11일 코스피는 기관 매도세에 하락 마감하며 이틀 연속 내림세를 보였다. 이날 오후 2시 47분 현재 코스피는 전날보다 11.14포인트(0.38%) 내린 2919.03을 기록하고 있다. 이날 지수는 등락을 거듭하면서 장중 한때 2903.72까지 떨어지기도 하며 아슬아슬하게 2900선을 지켰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 급등 여파가 컸다.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보다 0.9% 오르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6.2%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30년 만의 최고치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CPI 지표 발표 후 오름세를 보였다. 10년물 국채금리는 12bp가량 급등한 1.556% 기록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0.6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0.82%), 나스닥지수(-1.66%)가 일제히 하락했다.
증권업계는 미국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조기 종료하고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기축 통화국인 미국의 금리 인상은 국내 증시에 적잖은 충격파를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된다. 대외 여건 변화에 취약한 신흥국들이 자금 유출로 타격받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높은 금리를 좇아가면서 대규모 자금 유출도 우려된다.
이런 상황은 일찌감치 반영되고 있는 모습이다. 6월까지 매월 상승하던 국내 증시는 7월부터 매월 하락하고 있다. 1월 초 3000선을 소폭 웃돌던 코스피는 기세를 몰아 6월 말 3300선까지 치솟았다. 지난 6월 25일 3302.84로 상승 마감하며 주식시장 저력을 보여줬다. 이후 코스피 지수는 하락해 11월 들어서는 2900선까지 밀리며 맥을 못 추고 있다.
국내 증시를 떠받쳤던 동학개미들의 움직임도 이미 소폭 둔화됐다. 지난 1월 26조 원을 웃돌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거래대금은 이후 매분기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0월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11조7538억 원으로 파악됐다. 지난 1월과 비교했을 때, 반토막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개인투자자들은 11월 들어서는 6730억 원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 기조로 증시 자산에 자금이 몰렸던 ‘증시 버블’도 붕괴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10월 기준 국내 가계의 금융자산 가운데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21.6%로 역대 최고를 나타냈다. 증시 호황과 함께 ‘개인 자산의 주식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금리상승, 테이퍼링 등 유동성 축소는 과열된 주식시장 하락세와 함께 누적된 부채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 작년 12월 기준 우리나라의 민간신용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211%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2분기 93.1%)보다 높다. 금리 인상 압박이 강해지면서 부채가 늘어난 한계기업 등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10월 CPI 지수가 고점일 수 있다며 지나친 우려는 경계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선행 지표로 활용하는 철광석과 석탄, 곡물 등을 실어나르는 벌크선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 지수가 최근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정용택 IBK 리서치센터장은 “CPI를 발생시키는 원자재 가격이 10월에 급락했다. BDI가 급락했기 때문에 11월 이후 반영되는 물가지표에는 10월 같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본질적으로 시장이 힘을 못 쓰는 것은 향후 경기나 기업 실적에 대한 의문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산 키움 리서치센터장은 “중국과 미국 인프레이션 지표들이 높게 나오면서 시장의 우려를 자극한 것은 사실이나 인플레이션 우려는 지속돼왔던 상황으로 추가 하락을 통한 악재라기보다는 반등 시점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며 “유가, 원자재 가격이 안정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우려는 정점을 지나고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추가적인 하락보다는 인플레이션 지표가 연말 즈음에 진정이 되면 주식 시장은 반등, 추세전환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