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이 또 증세론(增稅論)을 제기했다. 우리나라의 인구·사회구조 변화를 고려한 증세가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그동안 재정 건전성을 무시하고 거듭된 팽창재정으로 나랏빚이 급증한 상황을 반영한다.
조세연은 28일 발간한 재정포럼 10월호의 ‘미국 바이든 행정부 조세·재정정책 논의 현황’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우리 정부의 ‘한국판 뉴딜’을 함께 평가하고, “정부 투자계획의 재원 마련 방안이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며 증세 필요성을 강조했다.
증세론은 새삼스럽지 않다. 조세저항에 대한 우려로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정치권 일각과 경제연구기관들이 꾸준히 필요성을 말해 왔다. 조세연도 여러 차례 ‘증세를 위한 정치적 합의’가 시급하다며, 사회안전망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소득세와 자산소득 과세 강화를 주장해 왔다.
장기화하는 경기 부진으로 세입 여건은 나빠지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복지와 일자리 예산 확대로 일관하면서 재정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작년부터는 코로나19 사태가 덮쳐 재난지원금 등 돈 쏟아붓기에 급급했다. 적자국채 발행으로 나랏빚이 급증해 국가채무가 내년 1000조 원을 넘는다. 현 정부 출범 이전 2016년 626조9000억 원에서 5년 만에 400조 원 가까이 증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도 작년에 마지노선인 40%를 넘었다. 내년에는 위험 수위인 50%를 웃돌게 된다. 지금 청년들과 미래 세대가 세금으로 갚아야 할 부담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위축으로 세수 기반이 약화하는 반면, 경직된 복지지출은 계속 늘어난다. 불가피하지만 실제 증세는 쉽지 않다. 아직 경제상황이 열악하고 국민들의 반발이 불보듯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직접적인 세금에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의 부담이 크게 늘어나 있다. 증세의 전제 조건인 재정지출 구조개혁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세연은 재정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지출구조 조정, 재정 누수 방지, 관행적 민간보조사업 정비 등을 우선적 과제로 제시했다.
증세의 타깃이 다시 ‘부자’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이는 점도 우려스럽다.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적 접근이다. 조세의 원칙은 국민 개세(皆稅)의 공평과세를 바탕으로 한 ‘넓은 세원, 낮은 세율’과, 납세자의 능력에 맞는 ‘응능(應能)부담’이다. 지금 이런 저런 감면제도로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근로자들이 전체의 40% 수준이다. 조세정의와 어긋난다.
보편적 증세가 아닌 ‘부자 증세’가 당장에는 국민적 저항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잘못된 정책이다. 민간의 활력을 살려 경제성장을 이끌고, 소득을 늘리면서 세수 기반을 확충하는 방향과 거꾸로다. 증세를 말하기 앞서, 세금이 허투루 새는 것을 막고 재정의 효율을 높이는 구조개혁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