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경제 위기 책임 서방에 물으려는 의도”
리라 가치, 기준금리 인하로 사상 최저수준
전문가들, 리라 가치 추가 하락 전망
터키가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10개국 대사를 추방하기로 했다. 내정 간섭을 했다는 이유인데, 정치 갈등이 고조되면서 터키 경제와 금융시장도 다시 위기에 빠지게 됐다.
23일(현지시간) BBC방송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자국 주재 10개국 대사들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했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는 외교사절을 받아들이는 국가가 기피하는 인물로, 사실상 추방을 의미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시한 국가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핀란드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다.
이들 국가는 지난주 터키에서 수감 중인 반정부 인사인 오스만 카발라를 석방하라는 공동 성명을 낸 곳들이다.
환경운동가였던 카발라는 2017년 반정부 시위 주동자로 구속된 후 지난해 무죄로 풀려났지만, 석방 직후 쿠데타 시도 혐의로 다시 수감됐다.
카발라는 2013년 정부가 쇼핑센터 건립을 위해 이스탄불 도심의 한 공원의 나무를 뽑을 당시 경찰과 대치했다. 이후 경찰의 강경 진압이 벌어지면서 환경 운동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산하게 됐고, 카발라는 정부의 눈엣가시가 됐다. 이에 유럽에선 그의 재수감에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10개국 대사와 함께 유럽인권재판소도 터키 정부에 석방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대사들은 감히 터키 당국에 명령을 내릴 수 없다”며 “이들은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돼야 하며, 즉시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사들은 터키를 이해하거나, 그러지 못하면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터키가 국제사회와 등을 지면서 자국 경제와 시장도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행동은 침체한 터키 경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잠시 서방과의 관계를 녹였던 그가 다시 냉전 관계로 돌아가려는 것을 의미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소네르 카갑타이 연구실장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사들을 추방함으로써 자국 경제 위기의 책임을 서방에 돌리려는 것”이라며 “경제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서방을 비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이틀 전 중앙은행이 두 달 연속 기준금리 인하(18%→16%)를 단행하면서 이미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달러당 리라화 환율은 2월 7달러 밑에서 거래됐지만, 현재 9.60달러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리라 가치가 앞으로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시장 트레이더들은 내년 1월 이전에 달러당 10리라를 기록할 가능성을 60% 넘게 보고 있다.
SEB그룹의 페르 함말룬드 애널리스트는 “리라화 환율은 이제 심리적 기준선에 가까워졌다”며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하한 것은 중앙은행의 신용을 더 훼손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