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만든 ‘K-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절반의 성공’을 했다. 우주발사체를 원하는 고도까지 올려보냈지만, 위성이 제 궤도를 찾지 못하면서 ‘위성 궤도 안착’이란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21일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이륙한 누리호는 우주 700㎞ 고도까지 날아올랐다. 하지만 더미 위성(위성 모사체)을 궤도에 안착시키지는 못했다. 아쉬운 성공인 셈이다.
절반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이번 비행이 어디까지나 ‘시험’이었던만큼 앞으로 시간은 많다. 앞서 최정열 부산대학교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누리호가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 따져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를 수정해 순수 국내 기술을 키워야 한다”며 “그래서 ‘시험발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리호는 우리나라 30년 우주개발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항우연은 내년부터 신뢰도 확보 사업을 통해 누리호를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추가로 쏘아 올린다. 이번 발사에 활용했던 위성모사체 대신 실제 임무를 수행할 차세대 중소형 위성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다.
궁극적 목표는 ‘달’이다. 정부는 누리호로 2030년 달 착륙선까지 쏘아 올린단 구상을 하고 있다. 누리호 발사를 이어가면서 달까지 갈 수 있도록 엔진 추력을 기존 75톤에서 80톤 이상으로 늘리고, 탑재체 최대 무게도 키우는 우주개발계획을 세웠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 유인 달 탐사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정식으로 합류하고 세계적 달 탐사 연합체에 이름을 올리며 독자적인 달 탐사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누리호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여는 지표기도 하다. 민간이 우주개발과 상업화에 나서며 생겨난 뉴 스페이스 흐름에 따라 세계 우주 경제 규모는 4470억 달러(약 526조 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스페이스X나 블루 오리진, 버진 갤럭틱 등이 재사용발사체, 민간 우주여행 등 다양한 우주 ‘산업’을 키우고 있다.
우주항공업계는 누리호 개발·발사를 통해 우리나라 우주산업도 뉴 스페이스 시대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항우연 중심으로 진행해온 발사체 개발 기술을 앞으로 추가적인 다섯 번의 발사를 통해 민간에 완전히 이전하겠단 계획을 밝혔다. 이미 누리호 프로젝트에 민간 기업 300여 곳이 밀접하게 참여하며 ‘K-스페이스’ 시대를 열어갈 것이란 기대감이 차 있다.
우주발사체와 위성 개발에 적용한 기술은 전기·전자, 소재, 통신, 에너지, 항공 등부터 의료, 3D 프린팅, 건축 등 다양한 연관 산업에 활용될 예정이다. 우주개발은 우리 삶의 변화도 이끌어 왔다. 지구 궤도 안을 공전하고 있는 수많은 통신위성과 기상위성, 관측위성, GPS 위성이 대표적이다. 발사체 개발을 통해 파생된 첨단 기술은 대거 민간에 이전돼 생활 곳곳에 숨어 있다. 자기공명 진단기(MRI)와 태양전지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 정수기, 냉동식품 등이 우주개발에 사용한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안보 전략 차원에서도 발사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은 대륙 간 탄도미사일 등 최고 수준의 무기체계 기술을 갖췄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주발사체는 미사일과 비슷한 구조와 원리로 작동한다. 따라서 미국 등 발사체 기술을 이미 확보한 국가의 경우 자국 발사체 기술의 이전이나 물자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