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분석 제대로 못해 인수 포기도
올해 7개월간 몰수 2000건 육박
"자금계획 세워 소신 입찰해야"
#. 지난 5월 법원경매에 부쳐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삼성청담아파트(전용면적 90㎡)는 감정가의 10배 가격에 낙찰됐다. 감정가 12억6000만 원 짜리 물건이 126억 원에 팔린 것이다. 낙찰자가 12억6000만 원을 쓴다는 게 실수로 '0' 하나를 더 기입해서다. 이 낙찰자는 잔금 미납으로 1억 원이 넘는 입찰보증금을 날렸다.
#. 지난달 경북 포항시 남구에서도 감정가 1억1300만 원으로 경매시장에 나온 전용 60㎡짜리 아파트('대우네오빌')가 10억230만 원에 팔렸다. 낙찰가율은 887%에 달했다. 업계에선 낙찰자가 경쟁자 16명을 누르고 물건을 손에 넣었지만 '0'을 하나 더 오기입한 것으로 보고 결국엔 계약을 파기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요즘 법원 경매시장에서 입찰보증금을 날리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집값 급등으로 너도나도 경매시장에 눈을 돌리면서 입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벌어지는 사례들이다.
19일 법원 경매 전문기업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7월 법원경매의 입찰보증금 몰수 건수는 1860건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2098건)보다는 줄었지만 2018년(1794건), 2019년(1846건)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몰수 금액은 약 300억 원대다.
법원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입찰보증금을 납부해야 한다. 감정평가액의 약 10% 정도다. 최고가로 가격을 써낸 낙찰자 외 나머지 응찰자는 해당 보증금을 돌려받는다. 그런데 낙찰을 받은 후 계약을 포기하거나 약 1개월 기간 안에 잔금 내지 못하면 보증금을 몰수당하게 된다.
보증금을 몰수당하는 가장 황당한 경우는 입찰표에 '0'을 하나 더 적는 것이다. 황당한 실수로 보이지만 매년 적지 않게 발생한다는 게 경매업계의 얘기다. 올해 상반기 강원 속초시 교동에서 나온 전용 76㎡짜리 주택은 감정가가 1억7000만 원 수준이었지만 무려 50억 원에 팔렸다. 낙찰가율이 무려 2924%에 달했다. 낙찰 금액이 커질수록 입찰보증금도 억대로 올라갈 수 있지만, 법원은 실수를 봐주지 않는다. 사소한 실수가 수천, 수억원의 치명적인 손실을 안기는 만큼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권리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아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시세보다 저렴하게 아파트를 낙찰받았지만 임차인의 보증금 등을 인수하면 시세보다 가격이 크게 뛰는 것을 감안하지 않았다가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다. 임차인의 보증금 인수 여부는 수익률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시세를 잘못 조사하거나 자금 부족으로 납부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희 지지옥션 연구원은 "주택 경매 물건을 담보로 대출받는 경락잔금대출도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일종으로 대출 승인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는 만큼 철저한 자금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경매시장은 주거시설을 중심으로 유례없는 투자 열기를 내뿜고 있다. 아파트값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뛰면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자 시세보다 저렴한 값에 나오는 경매 물건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지난달 서울 빌라(연립ㆍ다세대주택)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97.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도 115.0%로 전월(116.3%)보다 낮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 연구원은 "경매시장의 과열된 분위기나 경매 현장 분위기에 휩쓸려 입찰표를 작성하다가 실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미리 작성해가는 것도 요령"이라며 "경매에는 소신 입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