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사용의 감소가 CBDC 도입 논의를 촉발한 첫번째 이유는 지급시스템의 안정성과 관련이 깊다. 중앙은행화폐인 현금은 화폐시스템을 유지하는 ‘신뢰의 닻’이다. 예금화폐가 교환수단으로 인정받는 근거도 ‘현금과 가치 감소 없이 교환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예금화폐는 완전한 무위험 화폐가 아니다. 원칙적으로 은행이 파산하면 예금화폐는 가치가 훼손된다. 대공황 이후 예금보험제도가 도입되어 일정한도의 예금화폐는 국가보장을 받지만, 그 이상은 그렇지 못하다. 물론 금융위기로 은행이 파산으로 몰리면 정부는 은행을 구제하여 지급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에 따르는 비용이 막대하다. 그래서 ‘현금 없는 전자결제’시대에도 모든 시민이 위기 시에 교환 및 가치저장 수단으로 의지할 전자 형태의 중앙은행화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CBDC 도입 논의의 주된 배경이 되었다.
또한 CBDC는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은행과 민간기업이 결제시스템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도 필요성이 제기된다. 전자결제는 현금 처리에 따르는 불편과 위험 그리고 거래비용을 줄이기 때문에 확산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민간 전자결제는 다른 비용을 초래한다. 현금카드나 신용카드, 모바일 결제수단은 소비자에게는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지만 판매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한편 저소득층일수록 현금 의존도가 높아 전자결제의 편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게다가 영리기업이 지급시스템을 장악하면 막대한 거래 데이터가 사적으로 독점된다. 따라서 지급시스템과 거래 데이터가 사적으로 독점되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현금이 사라져도 모든 시민이 무위험의 중앙은행화폐를 활용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의 위험 없는 저비용 화폐인 CBDC의 도입이 필요하다.
중앙은행의 정책금리가 하한선인 제로에 근접하여 금리정책이 무력화된 상황도 CBDC 도입 논의의 한 배경이다. 현재 주요국들은 양적완화를 통한 대출을 확대하고 현금을 직접 투입하는 ‘헬리콥터 머니’와 같은 비통상적 통화정책까지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CBDC가 비통상적 통화정책의 적합한 수단이라며 도입을 주창한다. 하지만 모두가 보편적으로 활용하는 CBDC 도입은 은행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CBDC가 예금화폐보다 우월한 수단이 되면 은행예금이 일시에 CBDC로 전환되어 은행들이 자금중개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가령 사람들이 은행대출금을 예금 형태로 보유하며 사용하지 않고 모두 CBDC로 전환하면 은행은 예금 고갈로 신용창조를 할 수없다.
그러므로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량을 완전히 통제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 논의되는 CBDC는 보유 한도, 적용 금리, 거래정보의 익명성 여부 등 추가적 속성 때문에 나라별로 검토하는 유형이 상이하다. 그래서 CBDC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를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혁명이 CBDC를 통해 화폐와 은행시스템에도 근본적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