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와 CJ ENM 등 유료방송사업자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간 콘텐츠 사용료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되던 ‘선공급 후계약’ 관행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변화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한 위원장은 앞서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선공급 후계약 문제를 선계약 후공급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 지적에 “선계약 후공급 문제는 저희도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그간 유료방송 업계에서는 PP들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IPTV나 케이블TV에 먼저 콘텐츠를 공급해 방송을 송출한 후 계약하는 ‘선공급 후계약’ 관행이 이어졌다. 명확한 계약 없이 콘텐츠만 먼저 송출하다 보니 PP들은 프로그램 사용료가 얼마인지 알 수 없어 향후 콘텐츠 투자 계획을 잡기 어렵다는 예측 불가능성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에 대해 IPTV 협회는 “IPTV사가 PP사와의 계약 기간이 지나도 기 계약서 기준으로 사용료를 월별 지급해 채널 평가를 통해 측정된 콘텐츠 가치를 소급 적용했다. PP사에서 콘텐츠 투자 규모에 대한 예측이 어려운 상황은 전혀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계약 관행에 대한 문제는 IPTV 3사와 CJ ENM 간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을 두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올해 상반기 IPTV 협회는 CJ ENM이 당시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25% 이상의 콘텐츠 공급 대가 인상을 요구했다며 인상 액수가 과도하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상호 이해 관계자들 간의 합리적이고 타당한 수준의 협의와 합의는 뒷전으로, CJ ENM이 자사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사업의 성장을 위해 유료방송 사업자를 불합리하게 차별하고 있다고도 공세를 펼쳤다.
이에 대해 CJ ENM은 정당한 프로그램 사용료를 책정하자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강호성 CJ ENM 대표이사는 5월 기자간담회에서 IPTV가 프로그램 사용료로 지급하는 수신료가 미국 대비 낮고 종합유선방송(SO) 사업자들과 비교해서도 인색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콘텐츠 공급으로 어느 정도 수익이 나는지 예측하지 못하면 ‘산업’이라 할 수 없다. 선계약 후공급 부분은 빨리 개선이 이뤄져 콘텐츠 사업자들이 예측 가능성을 갖고 제작, 공급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양측의 갈등은 ‘블랙아웃’ 사태로도 이어졌다. CJ ENM은 LG유플러스의 OTT U+모바일tv에 전년 대비 175% 늘어난 사용료를 제시했다. 이전까지는 LG유플러스와 KT의 OTT 서비스에 IPTV 계약과 연계해 협상했지만, OTT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분리해 협상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LG유플러스는 인상 폭이 과도하다고 판단해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협상은 결렬돼 결국 송출 중단 사태까지 일어났다.
계약 관행과 관련해 학회는 선계약 후공급의 정당성에 힘을 실리는 분위기다. 지난달 초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미디어정책학회 주최로 열린 ‘통합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미디어 정책 재설계’ 세미나에서 전범수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선공급 후계약 채널 거래로 PP의 협상력이 감소하고 글로벌 OTT 사업자 거래와 역차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협상력을 기준으로 볼 때 콘텐츠 사업자의 안정적 투자와 사업 운영을 위해 선계약 후공급 채널 거래 방식을 검토해야 할 때라는 판단이다.
다만 이러한 계약 관행 변화 시 중소 PP의 협력상 저하가 우려돼 이에 대한 해법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한상혁 위원장은 국감에서 계약 관행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중소 PP를 보호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계약 후공급으로 갈 경우 대형 PP보다 경쟁력 없는 PP는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다. 입법 논의 과정에서 이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유료방송 사용료 배분구조 등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방송채널 대가산정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지난 1월 킥오프 회의를 시작으로 매달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협의회는 합리적인 프로그램 사용료 책정을 위해 PP 채널평가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