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승소 소식에 환영…“늦어서 미안”
주최 측 "1시간30분 동안 70여명 왔다가"
국방부 앞에 작은 촛불 길이 열렸다. 7일 오후 7시께 삼각지역 13번 출구 앞, 하나둘 모인 사람들은 촛불등을 밝히고, 70m 간격을 유지한 채 걸었다. 느리고 고요하게, 어떤 구호도 발언도 없었다. 마치 떠다니는 작은 별과 같았다. 이들은 변희수 전 하사를 기억하는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을 판넬에 붙이고 조용히 돌아갔다.
이날 오후 7시부터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선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주최한 변 전 하사 추모 행동이 열렸다. 추모에 참여한 시민들은 주최 측이 나눠준 종이와 촛불등을 들고 삼각지역 13번 출구서부터 국방부 정문ㆍ서문ㆍ전쟁기념과 일대를 걸었다.
이들은 조용히 촛불등을 들고 각자의 방식으로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변 전 하사를 기억했다. 이날 대전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오영표)는 변 전 하사가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강제 전역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이드 활동가는 이날 오후 6시 30분부터 시민들을 기다렸다. 그는 2주 전부터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오늘 승소 소식을 기다렸다고 했다. 이드 씨는 "변 전 하사의 명예회복 승소는 성수자들이 사회로부터 인권을 지지받고 승리하는 경험을 안겨줬다"면서 "오늘 이 모임은 이 재판 결과를 기다린 시민들이 따듯한 연대를 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행진 순서를 기다리던 22세인 ㄴ씨는 "오늘 승소 소식을 듣고 꼭 이 행사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핸드폰을 들어 추모 행사 안내 이미지를 보여줬다. 해당 이미지는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며, 차별과 혐오를 건너는 밤'이라고 적혀있었다.
국방부 앞에 임시로 설치된 게시판에는 포스트잇이 여러 개 붙었다. 포스트잇 내용을 보면, 변 전 하사의 승소를 축하하는 마음과 차별 없는 국방을 기다린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변희수 하사 복직 소송 승소, 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 응원하겠다.", "변희수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다.", 혐오로 사람을 죽인 국방부를 규탄한다.", "#강제전역취소처분 승소! #차별금지법 제정!", '너무 늦어서 미안해요.' 등이 있었다.
이날 판넬에는 정의당 대선후보인 이정미 전 대표의 메시지도 있었다. 그는 "당신 없는 이 땅에서 또 다른 변희수와 함께 이날을 기억합니다. 차별 없는 모든 인간이 존중받는 세상, 함께 만들겠습니다"라고 남겼다. 혼자 추모 길을 걷던 이 전 대표는 이투데이와 만나 "그분(변 전 하사)이 없는 데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게 사실 기가 막힌 상황이다. '아니다, 희망은 있다. 세상은 바뀔 수 있다'라는 바람이 전해지길 바란다"라고 했다.
시민들은 이날 승소 소식을 환영하면서도 안타깝다는 심정을 전했다. 23세인 ㄱ씨는 "너무 늦었다. 살아계실 때 가서 한마디라도 편을 들어주지 못한 마음에 오늘 이 자리에 왔다. 생전에 변 하사 SNS을 팔로우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소식이 끊기더라. '그냥, 바쁘시구나'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다시 들리는 소식이 부고가 될 줄 몰랐다"며 기자와 걷던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러면서 "국방부가 항소한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생전에 국방부에 헌신하던 변 하사의 진심을 알아주고 강제 전역시켰던 모욕을 이제 멈춰주길 바란다"고 했다. 같은날 오후 7시 20분께 국방부 정문 앞 촛불 행렬이 늘자 한 외국인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한 시민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오늘은 그녀(she)가 다시 군대로 복귀하라는 판결을 받은 날"이라고 답변했다.
이날 법원은 변희수 전 하사 전역 취소 청구 소송에서 변 전 하사 측 손을 들어줬다. 심신장애 여부 판단 당시 변 전 하사 성별은 명백히 '여성'이었던 만큼 남성을 기준으로 "장애가 있다"고 본 군의 처분에 문제가 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한편, 이날 행사가 종료된 8시 30분께, 주최 측은 총 70여 명의 시민이 오간 것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