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헝다 파산위기와 젊은 세대의 ‘마오피팡’

입력 2021-09-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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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요즘 중국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서 ‘마오피팡’을 구매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마오피팡(毛坯房)은 건물은 완공되었으나 타일, 벽지 등 내부 장식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콘크리트와 바닥만 있는 주택을 일컫는 말로 우리에겐 매우 낮선 광경이다. 이와 반대로 건설 시공사가 타일, 벽지 등 기본적인 내부 장식을 모두 하고 분양하는 주택을 ‘찡좡팡(精裝房)’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마오피팡이 찡좡팡보다 훨씬 저렴하다. 시골에서 올라와 도시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 세대들이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올라가는 부동산 가격을 따라갈 수 없고, 조금이라도 싼 마오피팡이라도 빨리 사야 한다는 불안감과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강한 믿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2017년부터 중국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부동산 기업의 재무건전성 강화와 강력한 대출규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지역의 주택가격은 상승하는 추세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의하면, 7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4곳의 신규분양 주택가격이 전월 대비 0.4% 상승했다. 최근 웨이보 등 중국 SNS상에서 팡누(房奴, 집의 노예)가 되지 말고 스스로 팡주(房主, 집의 주인)가 되자며, 아무것도 없는 마오피팡을 스스로 꾸미고 집을 채워나가는 모습을 공유하는 젊은 직장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부 계정의 경우 수백만, 수천만 명의 젊은이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팔로하며 ‘나도 빨리 마오피팡을 사서 팡주가 되고 싶다’는 댓글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아파트가 없으면 결혼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중국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매우 보편화된 표현이다. 그 중에서 필자의 시선을 끈 SNS 계정이 있었다. “집을 살 수 없는 우리 젊은 세대, 당신의 중국몽은 아직 얼마나 남았나요?” 의미심장한 말이다. 중국 정부에 비수를 꽂는 말이자, 지금 중국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대변하는 표현이다.

현재 글로벌 리스크로 확대되고 있는 중국 최대의 부동산기업인 헝다그룹의 파산위기 사태도 중국 젊은이들의 마오피팡 구매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헝다는 2000년 초반부터 중국 전역 약 280개 도시에 1300개 이상의 아파트와 오피스·상가건물을 지으며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부동산 호황을 등에 업고 부동산 업계 1·2위 기업으로 급성장했고, 2021년 기준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의 122위까지 오른 기업이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은 아파트 매수 열기를 계속 부추겼고,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의 아파트 가격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러한 중국 부동산 열풍이 지금의 헝다그룹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파트를 지으면 지을수록 돈을 버는 구조이다 보니 헝다와 같은 대기업을 포함, 많은 중소 부동산기업들이 은행대출을 받아 무작정 아파트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헝다가 지은 지방 아파트 건물의 수요층은 대부분 젊은 직장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헝다 아파트 물량의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면 10만 명이 넘는 헝다 영업사원들을 동원해 젊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초조하고 불안한 심리를 자극해 할인된 금액의 마오피팡을 판매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주택은 거주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다(房住不炒)”라고 외치며 올해 상반기까지 300건이 넘는 부동산 규제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대도시 부동산 가격은 큰 변화가 없다. 이제 부동산 문제는 공산당의 리더십을 판단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헝다 이슈는 향후 중국경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헝다그룹에 건축 자재 및 설비 등을 제공하는 하청기업이 8441개 기업으로 약 400만 명의 고용자가 근무하고 있고, 현재 미지급한 금액이 약 9511억 위안(약 173조 원)에 이른다. 또한 헝다가 선분양한 아파트에 이미 입주금액을 낸 입주 예정자가 120만 명이 넘고, 헝다자산관리회사가 판매한 재테크 상품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도 몇십 만 명으로 피해금액만 약 400억 위안(약 7조3000억 원)에 이를 정도다. 헝다 이슈는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중국 내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헝다 파산위기가 중국판 리먼 브러더스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수많은 매체에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금융시스템이 해외자금 의존도가 높지 않아 글로벌로 확산될 가능성이 낮고, 대내적으로는 중국 상업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높아 2조 위안의 헝다 부채를 충분히 감내해 낼 수 있다.

문제는 중국 내 실물경제와 공산당의 정치 리더십에 미치는 파급이 크다는 것이다. 헝다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본 중국 시민들의 시위 확산과 젊은 세대의 마오피팡의 아픔이 심화될수록 중국 정부의 고민은 더 커져 갈 수밖에 없다. 빚내서 아파트를 짓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헝다의 파산위기를 일벌백계 차원에서 그냥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악화될 실물경제와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헝다 살리기에 나설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당신의 중국몽은 아직 얼마나 남았나요?’라고 외치는 중국 젊은 세대들의 절규에 그 해답이 있는 듯하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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