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마켓으로 장기운영 어려워 거래소 호소에도 정부 뒷짐만
오는 24일부터 가상자산거래소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른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은행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 받지 못해 신고를 못하면 정상영업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현금거래를 포기하는 형태로 신고를 하거나 폐업을 해야 한다. 9일 서울 삼성코엑스센터에서 열린 ‘가상자산 거래소 줄폐업 피해진단과 투자자 보호 대안’ 정책 포럼에서 금융위원회가 정책 방향을 잘못 설정, 중소형 거래소의 줄폐업·코인마켓 쏠림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일 거래량의 대부분을 소화하는 4대 거래소에만 정책이 집중돼 여타 거래소를 폐업이나 코인마켓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관련해 향후 사법적 대응을 비롯해 국회·정부에 의견을 피력하겠다는 방향 또한 제시했다.
◇김치코인 투자자 보호 조치 미흡 = 포럼 참석자들은 금융당국과 정부가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에만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형 거래소들이 대부분의 거래량을 소화하는 상황에서 중소 거래소들이 정리 수순을 밟아도 큰 부작용이 없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고 것이다. 전날 기준 코인마켓캡 기준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일일 거래 규모는 전체의 91.5%를 차지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투자자들의 실황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인힐스의 자료에 따르면 9월 8일 기준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한국 원화로만 4.66%가 거래됐다. 국내 거래소에 상장돼 원화거래 비중이 80%가 넘는 김치코인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4대 거래소를 제외한 중소형 거래소에서 약 3조 원 가량의 김치코인 투자 수요를 소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형묵 금융소비자연맹 전문연구위원은 “김치코인의 경우 아무도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정부정책으로 거래소가 폐쇄돼 내 코인의 가치가 제로가 되는 상황”이라며 “대형 거래소가 대부분의 거래를 차지하니 옮기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은행의 거래소 평가 기준에 코인 상장 개수가 포함되는 만큼 자체적으로 상장을 줄이는 상황이라 김치코인을 대형 거래소에서 받아들일 리 없다”라고 지적했다.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받기 어려운 만큼, 코인마켓만 운영해야 하는 거래소들의 어려움도 다뤄졌다. 도현수 프로비트 대표는 “실명계좌가 없으면 원화마켓을 내리고 코인 투 코인 거래소로 운영할 수 있지만, 사업성이 없어 장기간 이어갈 수 없다”라며 “우선 코인 투 코인 거래소로 전환해 신고를 하더라도, (9월 24일 신고기한) 이후 실명계좌를 받기 위해 시도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묵묵부답 은행·금융위= 김태림 법무비전 변호사 또한 “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거래소들은 헌법상 기본권인 영업의 자유에, 투자자들은 재산권에 중대한 제한이 발생한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말씀드리기는 애매하지만 향후 사법적 대응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거래소들의 반발이 거센 만큼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도 관련 의견을 국회와 정부당국에 적극 전달 중이다. 지난 1일 고승범 금융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한 이후, 9일 오후 금융정보분석원(FIU)와 면담을 통해 연구 내용들을 전달했다. 약 1시간 정도 소요된 면담에 참석한 관계자는 “금융당국 특성상 면담 자리에서 큰 입장 선회나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되진 않았다”라며 “다만 외부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서로가 공간을 좁혀가는 기회들이 마련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또한 “(FIU도) 은행이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라며 “그래도 은행 얘기만 듣기보다 거래소의 목소리를 듣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면담 자리에서 한 거래소 대표는 눈물을 비치며 시장 상황을 살펴달라 호소했다 전해졌다.향후 한국핀테크학회와 KDA는 거래소 줄폐업 피해규모에 대한 최종 연구 결과를 10월 중에 다시 한번 발표할 예정이다.
13일 예정된 가상자산 정책 당정회의에서도 관련 내용이 다뤄질 예정이다. 국회 관계자는 “가상자산 관계부처들과 국회 관계자들이 모여 해외 사례 또한 종합적으로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소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