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감독기관의 권위를 지킬지 기로에 선 가운데 정은보 금감원장의 결단에 이목이 쏠린다.
금감원은 이달 17일까지 1심에서 패소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중징계 취소소송에 대한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1심 판결문을 수령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항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손 회장과의 행정 소송 1심 판결문을 이달 3일 정식 수령했다. 주목할 점은 항소 가능 기한까지 일주일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금감원이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금감원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손 회장과의 행정소송은 정 원장이 부임하기 전부터 진행됐던 사안이다. 정 원장이 부임하기 전 금감원 내부에선 “패소하면 당연히 항소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1심에서 패소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올 때도 내부에서는 항소를 당연히 염두에 두는 분위기였다.
금감원 내부적으로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소를 당연히 해야 한다는 기존 기조를 이어갔다면 지금쯤이면 항소 결정은 물론 이후 대응 방식을 논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소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정 원장과 담당 부서 간 이견설이 나오는 것이다. 금감원은 1심 패소부터 지금까지 항소 여부만 논하는 회의를 이미 수차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금감원이 항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경제개혁연대·경제민주주의21·경실련·금융정의연대·참여연대·한국YMCA전국연맹은 “금감원은 당연히 항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해당 단체들은 1심 판결에 대해 “금융회사의 준법감시 의무를 사실상 형해화한 것일 뿐만 아니라 내부통제기준을 앞서 도입한 나라들에서는 모두 실효적 작동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한 것”이라며 “금감원은 이번 판결을 금융회사와 그 임직원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의 빌미로 삼으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금융소비자 보호와 준법경영 관행의 정착을 위해 즉시 항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과 손 회장의 행정소송은 금융권 관심사다. 금감원이 1심 패소로 소송전을 마무리 짓는다면 금감원은 금융지주 회장과의 징계를 잘못 내렸다는 걸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판부가 손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판결문을 통해 우리은행이 상품위원회 결과 조작 등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명시한 것도 금감원이 항소를 포기하면 그대로 묻히는 것이다.
추후 금감원이 금융회사와 임직원을 대상으로 기관 및 관계자 징계를 내릴 때 감독기관으로서의 권위가 떨어질 수도 있다. 손 회장의 행정 소송 결과로 유사한 내용으로 소송 중이거나 징계 대상인 금융회사 임원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 원장이 경험이 많은 만큼 감독 기관 수장으로서 내리는 결정에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