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반도체 ‘치킨게임’…시험대 오른 삼성전자

입력 2021-09-08 14:36 수정 2021-09-0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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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유럽 반도체 공장 신설에 110조 원 투자…TSMC, 대만에 7나노 공장 건설 검토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위치한 인텔 공장. 챈들러/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위치한 인텔 공장. 챈들러/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연이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반도체 업계의 ‘치킨게임’이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투자를 발표했던 인텔은 유럽에도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고, TSMC는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대만에도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 2000년대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삼성전자는 또다시 경쟁자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으며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치킨게임 :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팻 겔싱어 인텔 CEO(최고경영자)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자동차 전시회 ‘IAA 2021’에서 “인텔이 유럽 내 반도체 신공장 2곳을 계획 중이며 향후 공장을 더 확장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공장 위치는 아일랜드로 선정됐으며 이곳에서 자동차용 반도체가 생산될 예정이다. 투자금액은 950억 달러(약 110조 원)로 추산된다.

인텔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동차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과 향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반도체 품귀 현상 탓에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GM과 포드가 감산을 선언했고, 토요타도 글로벌 생산량 40%를 감축하기로 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20년대 말까지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인텔은 올해 3월 200억 달러(약 23조 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신설하고, 35억 달러(약 4조 원)를 투자해 뉴멕시코주 공장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텔이 6개월 만에 또다시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업계의 물량 싸움은 한층 더 확대됐다.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 로고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 로고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1위인 대만 TSMC도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연일 발표하고 있다. 타이완포커스 등 대만 현지언론은 TSMC가 대만 가오슝에 7nm(1나노미터=10억분의 1m) 기반의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투자 규모는 수천억 대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이르면 2023년 착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가 진행되면 사물인터넷(IoT), 자동차의 반도체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TSMC는 최근 첨단 반도체 공정 생산능력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5나노 공정을 타이난 공장에서 가동했으며,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는 3나노 공장도 타이난에 짓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는 120억 달러를 투자해 5나노 공장 건설에 나섰다. 이밖에 독일과 일본, 미국 추가 지역 투자도 검토 중이다.

인텔과 TSMC의 팽창에 맞서 삼성전자는 미국에 20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오스틴 공장과 가까운 텍사스주 테일러시가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된다. 시스템반도체는 2030년까지 171조 원을 투자해 글로벌 1위 도약 발판을 마련하고, 메모리반도체는 선단공정을 조기 개발해 절대우위를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유수의 반도체 기업들이 앞다퉈 증설을 추진하면서 반도체 치킨게임이 재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유례없는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경험하면서 반도체 증설 움직임이 본격화됐지만, 공장 증설에만 수년이 걸려 단기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해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장 완공 후 공급 과잉으로 반도체 업계의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급등한 반도체 가격이 올 하반기 말이나 내년에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라 나오며 반도체 회사들의 수익성 이슈도 대두하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치킨게임을 이미 두 차례 겪은 바 있다. 2007년 대만 D램 기업들의 생산량 확대로 1차 치킨게임이 벌어졌고, 2010년대 들어 대만과 일본 기업들이 투자와 증산을 선언하면서 2차 치킨게임이 발발했다. 1990년대 20여 곳에 달했던 D램 업체는 2000년대 초반 10여 개로 줄었고, 2005년 이후에는 5개로 재편됐다.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의 글렌 오도넬 연구원은 CNBC와 인터뷰에서 “한국, 일본, 미국, 대만, EU, 중국은 모두 테크 올림픽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탐내고 있다”라면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약 2년이 걸리고 10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겠지만, 이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을 빨리 해결하지도 않을 것이고, 금메달을 보장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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