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지부진 용산재개발, 그 사이 대책없이 내쫓기는 임차인들

입력 2021-09-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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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1-09-09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도시재생활성화 사업 지지부진…국제업무지구 연계 개발 추진
수십년 된 매장도 줄줄이 폐점…상인 "상권 활성화 노력 물거품"
전문가 "임대인 희생 강요보다 재산세 감면 등 재계약 혜택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 '나진상가 12동' 거리 일대는 점포 곳곳이 문을 닫은 모습이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 '나진상가 12동' 거리 일대는 점포 곳곳이 문을 닫은 모습이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가게가 텅텅 비어있는데 어떻게 여기를 전자상가라고 할 수 있겠나.
개발이 문제가 아니다. 임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6일 기자가 찾아간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 거리는 썰렁하다 못해 적막했다. 몇몇 조명 가게만이 손님이 없는 거리를 외롭게 비추고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거래 시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용산전자상가 내 나진상가 12동에서 25년간 전자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A 씨는 양옆으로 텅 빈 점포를 보고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A 씨는 “건물주가 2층에서 3층까지 통건물로 계약하는 게 아니면 계약을 해주려고 하지 않는다”며 “지금 용산전자상가는 개발이 문제가 아니라 임대가 문제”라고 토로했다.

A 씨 점포 바로 옆에서 전기부품을 판매하는 B 씨는 올해 말이면 점포를 비워야만 한다. 무려 30년간 B 씨와 동고동락했던 점포다. 그는 “아무래도 이곳이 개발한다는 말이 많으니까 건물주들이 빨리 팔려는 것 같다”며 “개발 소식이 오히려 소상공인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라고 하소연했다.

앞서 용산전자상가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17년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선정돼 5년간 약 477억 원을 투입해 상권을 활성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개발이 지지부진했고,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다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용산국제업무지구-용산전자상가 연계전략 마련’이라는 용역을 발주했다. 낙후한 용산전자상가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과 연계해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용역 결과를 11월 발표될 용산정비창 개발 가이드라인에 포함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기자가 찾아간 6일 용산전자상가 내 매장은 찾는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기자가 찾아간 6일 용산전자상가 내 매장은 찾는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하지만 서울시의 용산전자상가 개발 계획에도 일대 상인들은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수년간 서울시의 개발 계획이 지지부진했던데다 오히려 개발 소식으로 인해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원효상가에서 10년간 컴퓨터 매장을 운영하는 C 씨는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일대 상권이 좋아졌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체육시설, 어린이집 등도 짓겠다고 했는데 추진도 잘 안 되는 데다 이런 사업이 전자상가 상권 활성화와 크게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용산전자상가 '나진상가 19·20동' 1층 중앙 복도 양옆으로 빈 점포들이 가득하다. 이 일대 상인들은 임대 재계약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해 쫓겨날 신세에 놓여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용산전자상가 '나진상가 19·20동' 1층 중앙 복도 양옆으로 빈 점포들이 가득하다. 이 일대 상인들은 임대 재계약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해 쫓겨날 신세에 놓여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무엇보다 현재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임대 재계약이다. 애당초 건물주가 재계약을 하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변 환경을 개발하는 사업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나진상가 19·20동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지하 1층~지상 3층 건물 전체 108개 점포 중 영업 중인 점포는 10여 곳에 불과했다. 사실상 텅 빈 통건물이었다. 20년 넘게 자리를 지켰던 점포들이 불과 1~2년 새 줄줄이 나갔다. 2017년 사모펀드 ‘IMM인베스트먼트’가 기존 나진상가 소유주였던 ‘나진산업’을 인수한 이후부터 임대 재계약이 어려워졌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매장을 운영했던 D 씨도 다음 달이면 가게를 비워야 한다. 임대 재계약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D 씨는 “상인들이 전자상가 상권 활성화를 위해 수십 년간 노력했는데 무너지는 건 하루아침”이라며 한탄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상인이 있어야 도시재생사업 같은 개발도 의미가 있다”며 “상인들 입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강로 S공인 관계자는 “아직 용산전자상가를 어떤 식으로 개발할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지만, 향후 개발을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해 건물주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2018년 10월 16일 이후 체결된 임대차 계약에 대해 임대인이 10년간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다만 이 이전을 기준으로 체결된 계약은 5년까지 보장된다.

용산전자상가 내 상가 대부분이 이미 5년 이상 계약이 갱신된 경우여서 전문가들은 법적으론 문제가 없기 때문에 임대인에게 재계약을 강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임대료를 조정하는 등 임차인과 상생하는 방안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기본적으로 임대인도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임차인을 위해서 갱신이 아니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서 적정 임대료를 다시 맞추는 상생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 교수는 “임대인에게 마냥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며 “재계약을 하는 임대인에게 양도세재산세 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

현재 나진상가 임대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곳은 나진산업이다. 상인들과 임대 재계약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나진산업 관계자는 “지금 나진상가 임대 문제 관련해서는 말을 해주기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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